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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신<작곡가> |
작곡가의 악보에는 음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음표 위에는 그것을 어떻게 연주할지 나타내는 지침들이 있다. 이러한 지침 중에서도 ‘칸타빌레(cantabile)’는 우리 귀에 익숙한 용어일 듯하다. 차이콥스키의 작품 ‘안단테 칸타빌레’가 유명하기도 하고, 수년 전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중에는 ‘노다메 칸타빌레’가 있었다. ‘칸타빌레’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듯이’라는 뜻을 가진 음악용어다.
그런데 이 칸타빌레는 성악곡이 아닌 기악곡에 붙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악곡은 이미 그 자체가 사람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노래’이니 칸타빌레를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약 첼로 곡에 칸타빌레가 쓰여 있을 때 첼리스트는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까? 아마도 첼로 활을 들기 전에 자신이 그 멜로디를 어떻게 부를 것인지 먼저 상상해 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방식대로 첼로 현을 켤 것임에 틀림없다. 즉 첼로는 연주가 내면의 고유한 울림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내는 하나의 수단, ‘매개체’인 셈이다.
악기는 가만히 두면 그 자체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첼로와 같은 현악기는 활을 쥔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하고, 플루트와 같은 관악기는 사람이 불어넣는 호흡을 통해야만 소리를 낼 수 있다. 연주가는 자신이 가진 내면의 노래를 악기를 통해 표현하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연주가가 가진 본연의 음악이 나타난다. 이것을 음악적 해석이라 부른다. 같은 곡, 같은 악기라 할지라도 연주가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고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표현이 있다. 인간은 이 생기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유기적인 생명체가 된 것이다. 음악에서 칸타빌레는 악기에 생기를 불어넣으라는 표현이다. 악보 위에 박제돼 있는 음표들을 마법의 언어인 칸타빌레로 일깨우라는 작곡가의 지침인 것이다.
연주가는 자신의 악기를 통해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 순간 음표는 살아나서 노래하고 춤춘다. 20세기 독일의 전위예술가 요제프 보이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개개인은 한 사람의 예술가다’라고. 우리가 무슨 악기를 들고 있건 그 도구를 통해 우리 삶의 고유한 예술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칸타빌레! 겨우내 움츠려있던 삶에도 곧 그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모든 삶이 각각의 아름다운 노래를 하게 되기를 바라본다.정은신<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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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칸타빌레](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1/20190131.01020074212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