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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마음의 순례지

2019-02-19
[문화산책] 마음의 순례지
박현주<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신은 망했다.’ 이것은 이갑수 시인의 ‘신은 망했다’란 시다. 신도 망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일순 웃음이 난다. ‘아, 망했어!’라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치는 사람의 모습과 오버랩되어서다. 이 시에서 신이 망한 이유는 뭘까. 일단 시골은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소, 닭, 오리, 개, 사마귀, 벌레…. 여기에 개인적으론 할아버지 댁에서 볼 수 있었던 사슴도 추가된다. 그 외에도 흙길, 돌담, 논, 밭도 있다. 상당히 많은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고, 자연과 인간이 반반 합의한 것 같은 모양새다. 그런데 도시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곳이다. 자연과 합의하고 지내보라는 신의 뜻과 어긋나서 망한 걸까, 아니면 조물주가 된 듯 도회를 건설한 인간의 오만함 때문일까.

나는 종종 앞산터널을 이용하기 위해 유천교네거리를 지나간다. 어느날 문득 ‘가만, 냇물도 없고 다리도 없는데 이름이 왜 유천교지?’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예전 이곳에 냇가가 있었고, 복개도로로 전체를 덮어 하단에 흐르는 진천천의 실체가 있었던 것이다. 그 어렴풋한 기억마저 없었더라면 그곳의 자연적인 모습이 어땠는지 전혀 몰랐을 거다. 새삼스럽게 찾아온 아쉬움이 사소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는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고, 인류가 수천 년 문명의 노하우를 축적해오며 그 삶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인간의 창의성까지 곁들어 불편한지 모르고 살았던 영역까지 더 진화한다. 참 편한 세상이다. 다만 자연의 흐름에서 훌쩍 벗어난 속도에 우리 감성은 도시의 차가움에 물든 것 같다.

여행이 요즘 대세다. 삭막해진 감성을 채우기 위해 다른 곳 살림살이를 슬쩍 보고 오는 것이다. 일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이런 시간을 통해 잠시나마 숨고르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단기간의 여행으로 퍽퍽한 감성이 완전히 채워지진 않는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있다. 마음의 순례지다. 언제든 가보고 싶으나 섣불리 가고 싶지는 않은, 미지의 낙원으로 남겨놓고 싶은 곳. 그러면 감성이 80%까지만 차올라도 20%의 여운을 이 낙원이 감당해주기에 그럭저럭 살 만하다. 내게는 파란 하늘과 낙엽으로 조화된 단정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월든호수가 그곳이다. 오래전부터 내 정신적 등불이었던 헨리 데이빗 소로가 여기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10대에 그의 저작을 접한 덕분에 마음 한 편 자리를 마련하고 지금껏 풍성하게 잘 가꿔왔다. 마치 그린벨트처럼 말이다. 지금 청소년들에게도 책과 예술작품을 통해 피난처를 만들라 권하고 싶다. 현실 낙원은 없지만, 마음에 품은 것만으로도 삶에 윤기를 더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현대인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한 탓인지, 인구소멸이 가시화되는 국면이다. 이번엔 도회지를 건설한 인간이 망한 걸까.

박현주<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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