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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신<작곡가> |
대학시절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보러 갔다. 처음 보는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잔뜩 기대를 했다. 신나는 서곡에 이어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는 피가로와 그의 연인 수잔나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무대 위의 세상은 이 세상이 아닌 듯 달콤했고 내 마음은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설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또 다른 남녀가 등장하고 또 한 남자가 등장하면서 마치 랩처럼 무수한 대사들이 귓전을 가득 채우며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 등장인물과 자막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것도 지쳤다.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면 잠에서 깨고 대사가 나오면 다시 잠이 들고, 그러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공연이 끝났다. 세 시간이 흘러있었다. 오페라가 이런 것이었나, 모차르트는 대체 왜 유명한 것인가. 그날 밤 수도 없이 되물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두 번 다시 ‘피가로의 결혼’을 보러 가지 않았다.
최근 독일여행 중 그저 오페라나 한 편 볼까 하던 차에 ‘피가로의 결혼’을 발견했다. 딱히 봐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 날 내가 머무르는 도시에서 하는 작품이 그것뿐이었다. 영화나 한 편 볼까 하고 극장을 찾았다가 내키는 영화가 없어도 보게 되는 날처럼, 나는 티켓을 사고 오페라 하우스에 입장했다. 늘 듣던 익숙한 서곡과 함께 막이 올랐다. 피가로와 수잔나는 그 옛날처럼 알콩달콩 음악으로 이야기를 풀어 갔고 케루비노의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감미로웠다. 역시 모차르트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백작과 백작부인이 등장하고 또 다른 남녀가 등장하며 수없는 대사가 오가는데 내 귀는 음악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로 된 대사를 내가 이해할 리가 만무하다. 순간순간 자막을 따라 읽기는 했으나 상당수는 그저 흘려 보냈다.
그런데 거기에 음악이 있었다. 그 옛날 나를 잠들게 했던 대사들이 쳄발로의 반주를 타고 아름다운 리듬이 되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감미로운 독창과 이중창이 나타나고 모든 인물의 합창이 이어졌다. 오케스트라는 아름다운 울림으로 노래와 노래 사이를 물결처럼 흘러다니고 있었다. 아, 정녕 모차르트가 이 곡을 썼단 말인가. 세 시간이 꿈처럼 흘렀다. 다음 날 같은 공연이 있다면 이 모든 음악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을텐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지난 20여 년 동안 내가 한 생각들과 겪은 무수한 일들이 모두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피가로의 결혼’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내 귀는 음악으로 가는 길을 늘 찾아왔던 것이다. 새삼 나이들어 가는 것에 감사하다. 모르고 지나쳤을 것들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롭게 알게 되고 느끼게 된다. 좋은 것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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