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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일상의 위대함

2019-02-28
[문화산책] 일상의 위대함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65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1천100곡이 넘는 작품을 작곡했다. 아마 그가 남긴 음악을 다 들으려면 열흘간 잠을 자지 않고도 부족할 듯하다. 지금도 그의 악보는 계속 발굴되고 있으니 음악 역사상 바흐의 작곡 분량을 따라갈 사람이 있을까 싶다. 오르가니스트, 교회음악가, 궁정음악가, 작곡가, 심지어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명처럼 그를 수식하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음악의 장르마다 바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가 음악사에 남긴 족적을 글로 쓰자면 한 권의 책으로는 부족할 만큼 실로 광대하고 깊다.

그러나 바흐는 죽을 때까지 독일의 지방 작곡가에 불과했고, 생전에 딱히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활동한 적도 없었다. 1750년 바흐가 죽자 그의 음악은 세상에서 곧 잊혔으며, 1800년 이후에야 후세 음악가들에 의해 다시 연구가 시작되고 악보가 발굴되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어떠한 개인적인 인터뷰도 거절했던 바흐이기에 우리가 현재 만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그의 작품뿐이다. 현대사회라면 작가의 그런 태도를 신비주의로 치부하겠지만, 정작 바흐는 작곡하며 먹고살기에 바빠 인터뷰를 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매일을 하루같이 작곡하고 또 작곡하는, 마치 개미가 부지런히 모이를 물어다 나르는 것처럼 딱히 대단할 것도 화려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도 모르고 죽은 유일한 작곡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저 일상을 통해, 주어진 소명에 묵묵히 응답했다. 그 소명인즉슨, 대도시에 살면서 열 명이 넘는 자식들을 지금으로 치자면 600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먹여살리는 것이었다. 그가 라이프치히에서 생의 마지막 27년을 보냈는데, 그의 일자리가 아이들의 교육비용을 담당해준 것이 큰 이유이기도 했다.

평생 돈과 관련된 편지를 가장 많이 써야했던 그의 기록물을 보면 바흐의 위대한 음악 뒤에 숨겨진 고단한 가장의 모습이 보인다. 평생을 묵묵히 일터로 나가는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 말이다.

그러나 바흐의 음악에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한탄도 없다. 그가 적어놓은 수많은 음들은 가야 할 길을 따라서 무심한 듯 정교하게 흘러간다. 무수한 반복의 일상 속에서 태어난 그의 음악은 심지어 경건하기까지 하다. 별로 드라마틱할 것도 비극적일 것도 없어 보이는 바흐의 삶을 통해 남겨진 음악은, 일상의 시간을 미화하거나 극화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낸 자의 고백 같은 감동을 준다.

정은신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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