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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일이다. 식민으로 고통받다가 일본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았지만,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는 없었고, 아직도 우리에게는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에 관하여 분명한 사과와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미 사과와 보상은 끝났다고 망발을 일삼는 일본에 강력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치욕적인 일이다.
2015년 동성아트홀에서 독립영화 ‘귀향’을 보면서 전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 간 소녀들의 참혹한 행적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보듬는 장면마다 아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나도 고개를 젖혀야 할 만큼 눈물을 흘렸다. 영화가 끝났을 때도 관객들의 복받친 흐느낌이 곳곳에서 들렸다. 그처럼 영화로 보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고통스러운데 그 소녀들은 어땠을까. 그 눈물은 말 그대로 상상 이상의 슬픔이었다. 분명 슬픔의 눈물을 흘릴 것이라 생각하고 본 영화였지만 그 슬픔의 끝은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위안부 문제에 보다 적극적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 2·28기념중앙공원 언저리에 세워져 있는 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과 서명 활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2019년 소극장 함께 사는 세상에서 본 연극 ‘할매의 방’은 극 전개의 시대가 영화 귀향과 다르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소극장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집단 성폭행을 당한 위안부 또래의 소녀가 등장하고,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자신의 존재를 가슴에 묻은 채로 웃음을 잃고 살아오던 할머니가 그 소녀를 가슴에 품으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비록 영화와 연극은 관객이 느끼는 슬픔의 깊이가 다를지라도 그 참혹한 역사를 결코 슬픈 웃음과 눈물만으로 잊을 수 없음을 확실히 깨닫게 한다. 나는 귀향에서 아버지가 어깨에 멘 지게에 올라타고, 나비가 나는 꽃밭에서 노래를 부르던 어여쁜 소녀가 위안부가 되어 두려움에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울고 있는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할매의 방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도 두려워 신고도 못하던 소녀가 우연히 할머니가 위안부였음을 확인하고, 죽음의 악몽 같은 서로의 상처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던 순간의 먹먹함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떤 역사도 과거일 수는 없다.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썩은 뿌리로 우리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겠는가.
김종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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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귀향과 할매의 방](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3/20190301.01018075905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