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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 봄이다

2019-03-08
[문화산책] 아, 봄이다
김종필(시인)

누가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은 너무 짜증스럽다. 그 마음을 떨치려고 휴일 오후에 동무들과 가창 숲길을 걷다가 식당에 들렀다. 전날 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하고 홀로 퍼마신 술 탓에 칼국수는 먹는 둥 마는 둥 창 가까이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초록이슬처럼 돋은 새순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D갤러리카페의 앞마당에는 형형색색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니고, 언저리에 피어 있는 딱 한 그루의 홍매화는 달콤했다. 갤러리 입구에 우두커니 먼 산길을 바라보고 있는 솟대는 혹 나를 기다렸을까.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창밖을 볼 뿐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으나 카페 벽마다 걸려 있는 그림은 온통 봄빛이었다.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은 봄의 숲에서 봄을 말하지 않고, 전화기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씁쓸함이란….

두리번거리다가 일어나서 그림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분홍의 봄아, 눈이 하얗게 쌓인 산을 넘고 두꺼운 얼음의 강을 건너오느라 힘들었겠지만 나는 참으로 설레는 기다림이었어. 초록의 봄아, 생명이 없을 것 같은 언 땅에서 파릇파릇 올라오는 너를 보았어. 그보다 가슴 벅찬 기쁨이 있을까! 그림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 속삭이고 있을 때 가만히 앉아 있던 동무가 시샘을 하듯이 불쑥 끼어들었다.

‘와, 그림도 온통 봄이네. 벌써 꽃이 피었을 줄이야. 그동안 갇혀서 벌벌 떨기만 하고 너무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았네. 다시 마당으로 나가봐야겠어. 저 아이들을 봐. 너무 신나는 봄이야.’ 겨울 동안 꽁꽁 얼었던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냥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이들을 불렀는데, 쪼르르 달려와서 숨차도록 웃더니 이내 마당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자 여기를 봐. 나무와 꽃, 아이들과 하나가 되는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당의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길고양이가 보였다. 녀석도 봄을 느끼는지 아주 느린 걸음이었고, 문득 후배 화가의 그림이 겹쳐 보였다. 파란 하늘이 잠긴 바다로 개와 산책을 나온 중년 남자가 벤치에 앉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개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봄이 숲에도 왔다. 내 속에 봄이 스며, 나는 봄이 되었다.

산그늘을 이른 어둠이 덮을 즈음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워서 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봄아, 이제 다시 시작이야. 두려워 마. 아무 걱정도 하지 마. 힘들 때는 내 어깨에 기대어 울어도 좋아. 사느라고 애썼다.’

아, 봄이다. 보이는 모든 것은 봄이다. 꽃이 피어야, 봄이라는 내 생각은 틀렸다. 공장의 기름때 얼룩진 겨울 일복을 벗을 때라야, 봄이 오는 내 삶도 틀렸다. 봄이다. 나는 지금 봄을 살고 있다. 징징거리지 말자. 따뜻한 말 한마디가 봄인 것을.

김종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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