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서·원화삼년·비로자나불 등
기존 22자 이외에 21자 추가 판독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이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이영호 경북대 교수와 함께 김천 수도암비를 조사해 추가로 글자를 판독했다. 왼쪽부터 김생서(金生書), 원화삼년(元和三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다. ‘원(元)’에서 붉은색 부분은 후대에 새긴 글씨로 인해 사라졌다. <위덕대박물관 제공> |
김천 수도암비 <오세윤 작가 제공> |
[경주] 신라 명필 김생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銘文)이 확인(영남일보 5월17일자 2면 보도)된 김천 수도암 ‘도선국사비’(이하 수도암비)가 김생이 808년(원화삼년)에 쓴 글씨를 새긴 비석이라는 추가 판독 결과가 나왔다.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은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이영호 경북대 교수와 함께 수도암비를 조사해 기존 읽은 글자 22자 외에 김생서(金生書)·원화삼년(元和三年)·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등 21자를 더 판독했다고 4일 밝혔다.
수도암비는 화강암으로 청암사 부속 암자인 수도암 약광전 앞에 있다. 크기는 높이 177㎝·너비 60~61㎝·두께 42∼44㎝다. 일제강점기에 판 것으로 짐작되는 ‘창주도선국사’라는 커다란 글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본래 세로 길이 4~5.5㎝인 글자를 8행에 26자씩 새겼다.
박 관장은 “비석 끝부분 8행에서 흐리지만 다른 글자보다 조금 작게 새긴 ‘김생서(金生書)’라는 세 글자를 찾았다”면서 “‘원화삼년’이라는 연호는 6행 중간에 있는데, 후대에 판 도(道)자에 의해 원(元)자가 가로로 절단됐으나 일부 획이 남아 있어 판독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박 관장은 또 “비석을 세운 목적은 박방룡 원장이 제1행에서 판독한 ‘비로자나불’을 통해 가닥을 잡았다”며 “수도암비는 신라 말기에 조성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의 정확한 제작 연도를 알려주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앞서 박 관장은 지난달 초 이영호 교수·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 수도암비를 조사한 뒤 김생 사후인 954년에 승려 단목이 집자(集字)해 만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보물 제1877호)와 필체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김생 진적(眞蹟·실제 필적)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생은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고, 여든을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아 입신(立神)의 경지에 이르렀다.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송종욱 기자
경주 담당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