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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영의 시중세론] 대북 쌀 지원은 헌법정신의 실천이다

2019-06-21

대북 인도지원 비판 있지만
일반적 경제지원과는 달라
사람부터 살리는 것이 중요
동포애 기초한 헌법의 명령
정부는 눈치 살펴서는 안돼

[최철영의 시중세론] 대북 쌀 지원은 헌법정신의 실천이다

정부가 북한에 국내산 쌀 5만t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총 비용 1천270억원 정도를 들여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는 것이다. 얼마 전 북한의 갓난 아기와 어린 아이들의 영양부족 해소를 위해 국제기구에 800만달러(약 94억원)를 송금한 뒤 바로 이어 나온 결정이다. 경기도 역시 10억원 상당의 밀가루 1천615t과 산림복구를 위한 5억원 상당의 묘목 11만본을 전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지지부진하던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뜬금없이 대북인도지원의 봇물이 터지는 모양새다.

사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과 같은 중립적이며 권위 있는 국제기구들은 북한의 식량부족이 예년에 비해 심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곡물 136만t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에게는 옛날 이야기가 된 보릿고개의 굶주림을 겪는 북한 주민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북한의 식량난이 영유아, 태아와 임산부, 수유여성의 생명이나 건강에 매우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어떤 의미와 형식으로든 도움을 주거나 지원하는 것에 반대하는 국민적 정서도 존재한다. 요즘 우리 경제도 어려운데 북한지원은 어불성설이라는 비난도 빠지지 않는다. 왜 우리가 주기만 하느냐는 불만도 있다. 북한 또한 떨떠름한 반응이다. 심지어 우리 정부의 인도적 지원에 대해 속에 칼을 품은 채 “생색내기를 한다”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 내부에서 대북 인도지원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도주의 정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은 우선 사람을 살리고 보자는 취지의 인도주의적 긴급지원이다. 생활의 불편을 개선해주기 위한 지원이나 더 잘살도록 해주기 위한 일반적 경제지원이 아니다. 그리고 인도주의의 근간은 박애(博愛)의 감정이다. 모든 사람은 같은 인류라는 연대감에서 출발하는 박애정신은 인류가 공통으로 갖는 극히 자연스러운 정서다. 멀고 가까운 이웃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불행과 괴로움을 같이 나누는 우리 민족 특히 우리 경상도 사람들의 의로움과 깊은 정(情)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박애정신은 긴급한 생명의 위협에 놓여 있는 상대방에게 쌀이나 밀가루의 형식으로 사랑을 일방적으로 퍼주는 것이고 뭔가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뭔가를 바란다면 사랑과 정의 나눔이 아니고 이익을 바라는 거래에 불과하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우리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인식을 하게 된 데는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 예컨대 우리 정부의 800만달러 북한 인도지원은 2017년에 대북지원민관정책협의회에서 의결되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의 여론과 대북 제재를 의식해서 실제 집행을 하지 않았다. 인도주의적 지원은 사람만 봐야지 정치를 보거나 경제를 보면 안되는데 우리 정부는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정부가 정말로 인도주의와 동포애적 마음이 있었다면 지원을 의결하자마자 그때 바로 보냈어야 한다. 우리 정부의 이런 모순적 행태가 우리 국민에게 인도주의를 왜곡해서 인식하도록 만들고 북한의 신뢰도 얻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이번에도 그러한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해서 걱정이다. 북한 주민의 생명과 관련된 쌀을 “한미가 협의해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하기로 하면서, 이러한 지원이 “남북·북미 간 신뢰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결국 생명을 살리기 위한 쌀 지원을 남북과 북미 간의 대화 재개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최고 법규범인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도록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정부는 동포애에 기초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쌀지원이 헌법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인 만큼 이런저런 눈치를 봐서는 안된다. 우리 정부의 성향이나 국제정세와 관계없이 꾸준하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야 우리 국민의 오해도 불식하고 북한 주민의 마음도 얻을 수 있다.

대구대 법학부 교수·대구시민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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