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90628.010340820000001

영남일보TV

철 사나이의 기술과 예술 융합 ‘모루’, 볼트·너트·멍키스패너 ‘공구빵’ 첫 개발

2019-06-28

■ 북향로드를 걷다

철 사나이의 기술과 예술 융합 ‘모루’, 볼트·너트·멍키스패너 ‘공구빵’ 첫 개발
대구 중구 대안동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란 이름을 가진 ‘모루’.
철 사나이의 기술과 예술 융합 ‘모루’, 볼트·너트·멍키스패너 ‘공구빵’ 첫 개발
패션마케터의 포스가 느껴지는 팩토리 공구빵의 최현석 대표는 북성로만의 관광상품이 없는 게 안타까워 공구를 모티프로 한 빵을 개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6월4일부터 자갈마당에서 포클레인 소리가 들렸다. 1906년 일본식 유곽으로 시작됐고 1909년 공창으로 최초 영업을 시작한 지 딱 110년 만에 인천 숭의동 옐로하우스, 부산 완월동과 함께 한국 3대 홍등가였던 자갈마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철거현장 바로 옆 대구예술발전소를 지나 동쪽으로 걸어갔다. 북성로공구거리. 쇳덩이에서 일어나 쇳덩이 속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철생철사(鐵生鐵死)’의 사내들이 새삼 대단하고 존경스러워 보였다. ‘스틸 이즈 마이 라이프(Steel is my life)’를 외치며 거무튀튀하게 살아온 저들이 생산하는 온갖 공구·철물류를 좌우로 번갈아 살펴보며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인 ‘모루’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북성로에서 생산된 물건 앞에 ‘Made in B’란 문구를 붙이자고 하는 주체가 있다. 북향로드의 향후 100년의 신지평을 편집해나갈 모루다. 모루만큼 북성로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모임체도 없을 것 같다. 모루는 2016년 북성로기술생태계 주민협업 공모전 때 ‘메이드 인 북성로’를 제안했다. 지역 예술가와 북성로 철공소 기술자를 융복합시켜 모루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작품 6개를 만들게 했다. 모루 입구에 그중 하나가 서 있다. 조각가 이기철이 스틸타일 등 북성로에서 구한 재료로 대형 멍키스패너를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스패너의 아가리가 푸른 이파리를 물고 있다. 언뜻 한 그루 나무로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이파리는 대구 시역(市域)을 파릇하게 터치한 것이었다. 지난 100년, 북성로맨들은 ‘블루칼라’로 천대받았을 것이다. 기름때 묻은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손을 가족한테도 보란 듯이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모루가 그들의 손을 ‘금지옥엽’으로 지켜올려준 것이다.


모루 맞은편 건물은 해체작업이 완료된 듯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50년 이상 존속했던 부영여관 최후의 모습이다. 모루가 있던 언저리는 방치된 여관촌이었다. 모루 역시 여관 자리에 지어졌다. 길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는 건축폐기물 더미, 아련한 추억의 냄새를 피워문다. 그 방을 스쳐갔을 투숙객의 체취 같았다. 그 냄새를 악취로 폄훼한다면? 더 이상 이 골목에서 ‘상생인문학’을 캐낼 수도 없을 것이다.

철 사나이의 기술과 예술 융합 ‘모루’, 볼트·너트·멍키스패너 ‘공구빵’ 첫 개발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인 ‘모루’의 대표 안진나씨.
철 사나이의 기술과 예술 융합 ‘모루’, 볼트·너트·멍키스패너 ‘공구빵’ 첫 개발
모루에서 편찬한 북성로 관련 서적들.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 ‘모루’
공구박물관 전시품·기증품 3천점 진열
안진나 대표, 철공소 문화 연대기 정리
공구·건자재로 빈티지 악기 제작·공연
1천여개 가게, 다섯개 별이름으로 분류

지난해 5월 개관한 모루. 2013년 ‘북성로공구박물관’으로 출발했고 현재는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로 확장해 이전됐다. 기술과 예술의 융복합. 그 발상이 참신하다. 중구청 소유인 이 공간은 2015년부터 2년간 지원된 ‘역사전통문화마을사업’과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지상 2층(연면적 264㎡) 규모다. 전시관, 장인작업장, 창작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관에는 기존 공구박물관 전시품과 시민 기증품 100여종 등 3천여점이 진열돼 있다. 북성로 거리를 그려놓은 대형 아크릴벽(길이 2.5m, 높이 5m) 뒤에 톱, 칼, 끌, 망치, 스패너, 정, 드라이버 등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녹슨 수동 연마기, 낡은 드릴링 머신, 수직 발동기 등 희귀 공구도 구경할 수 있다. 철물의 뒤안길을 이 공간만큼 잘 정리해놓은 곳도 없을 것이다.

거기서 특별한 포스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가 직접 조사해 집필한 ‘북성로 근대기술용어 사용설명서’란 부제가 달린 ‘북성로 용어사전’이다. 한중일 버전으로 편집을 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국내 기술자들이 본래 뜻도 모른 채 한국식 일본 발음으로 두루뭉수리하게 사용된 별별 용어들을 그가 깔끔하게 다림질해 놓았다. 1960~70년대 건축물 바닥처리 공법으로 가장 유명했던 ‘도코다시’, 그런데 틀린 표기였다. 표준말은 ‘다시 갈아낸다’는 뜻의 ‘도키다시’였다. 기름걸레를 의미하는 ‘보루(襤樓)’, 공구리는 ‘콘크리트’의 일본말, 보루방은 ‘드릴머신’, 물건을 덮는 큰 천인 ‘갓빠(合羽)’…. 해당 용어의 일본식 발음과 한자어, 그리고 영어까지도 감수를 받아 잘 정리해놓았다. 가령 서성로 득영닥트는 ‘함석공’이란 의미의 ‘브리키야’로 분류된다. 그 원류도 찾아냈다. 네덜란드어 ‘Blik’의 일본식 발음이 ‘브리키’, 거기에 집(屋)과 공(工)을 의미하는 ‘야’가 합성됐다는 걸 알려준다. 또한 자주 사용하는 수치와 단위도 일본어를 병행해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도해와 사진까지 곁들였다. 편집자의 세심함과 열정이 각별해 보였다.

모루 앞에 전시된 두 대의 낡은 기계. 조양철공소에서 만든 대구 첫 발동기와 이조철공소가 60년대에 만들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참기름 짜는 기계다. 벌건 녹물을 뒤집어 썼기에 더 정감어리고 훈훈해 보인다. 모루를 운영하는 사람은 모두 5명. 시민들에게 그리고 대구 골목문화의 미래에 꼭 필요한 일을 족집게처럼 찾아내 위탁관리해주고 있다. 그 중심에 안진나 대표가 있다. 경북대에서 고고인류학을 전공한 그녀, <사>인문사회연구소와 <사>시간과공간연구소 등을 거쳐 지금 자리로 독립해 왔다. 족집게 눈초리를 가진 그녀는 그동안 대구읍성상징거리조성사업, 근대골목투어, 북성로축제 등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관여했고 ‘북성로 철공소’의 연대기까지 꼼꼼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운영진 모두 디자인감각이 짱짱하다. 내친김에 ‘업사이클 밴드 훌라’까지 결성했다. 경북대 음악학과를 졸업한 김효선씨는 공모사업을 통해 ‘아나케스트라’(아나키와 오케스트라의 합성어)란 콘셉트로 북성로 공구와 건자재를 갖고 빈티지 악기를 만들어냈다. PVC피아노, 렌치·볼트·동파이프 실로폰 등이 그것이다. 모루의 스태프이기도 한 석민상, 문찬미, 나제현 등이 그 악기를 들고 공연하러 다닌다. 2017년 전주시의 철거대상지역에 마련된 골목소통공간인 ‘철봉집’ 개관 축하공연도 했다.

모루는 쇳덩어리를 ‘맘’이라 풀이한다. 그래서 북성(北城)을 ‘북성(北星)’으로 이해한다. 용접공업소는 금성, 목공소는 목성, 선반과 펌프는 수성, 대장간은 화성, 주물공업소는 토성이라 명명한다. 흩어져 있는 1천여개의 가게를 다섯 개 별(목화토금수)로 분류해 이름표를 부착해주었다. 자신이 어느 행성에서 온 가게인가를 주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그건 이들 가게가 대구산업계의 미래를 밝혀주는 별이기 때문이다. 북성로가 대구와 소통하는 미래를 ‘매뉴퓨처(Manufuture)’라 새롭게 명명했다. ‘손으로 만드는 미래’란 의미. 모루는 매뉴팩처를 매뉴퓨처로 업그레이드시킨 셈. 그래서 모루는 ‘북향로드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동드릴, 전동톱, 전동대패 등 웬만한 공구를 구비해놓아 예약하면 오픈팩토리에서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망각하고 있는 우리의 공작본능, 여기 오면 되찾아 갈 수 있다. 말이 안 통하는 가족이라면? 이 공방에 와서 이런저런 물건을 만들다 보면 소통이 뭔가를 절감할 것이다.

철 사나이의 기술과 예술 융합 ‘모루’, 볼트·너트·멍키스패너 ‘공구빵’ 첫 개발
공구빵

공구빵 스토리 ‘팩토리 09’
거리와 소통 문화상품 착수 최현석 대표
공모사업 아이디어 채택, 공구빵틀 제작
철공소 느낌 베이커리 카페 공구빵 매칭
日 관광객, ‘도쿄바나나’정도로 반겨

북성로에 공구를 모티프로 한 시그니처 빵이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모루 남쪽 골목으로 나와 우회전하면 별난 베이커리카페 하나가 나그네에게 손짓한다.

여긴 카페라 불리지 않는다. 그냥 ‘팩토리’로 통한다. ‘팩토리 09’, 여기서 공구빵을 만들고 있는 최현석 대표. 서른 중반의 그가 대뜸 “무척 덥죠, 고생이 많습니다”라면서 기자에게 아이스커피, 그리고 자기가 만든 공구빵을 매칭시켜 내놓는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청년이었다. 연신 만면에 서글서글한 웃음이 샘물처럼 번진다. 계명대 패션마케팅학과를 나와 공예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그도 모루와 윈윈하며 자신의 미래를 파릇하게 경작하게 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구빵을 개발했다. 일반 붕어빵보다 덜 촉촉하다. 프랑스에서 발원한 마들렌의 일종. 그는 손기술의 메카인 북성로가 추락하고 있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이런 인프라는 다시 조성할 수도 없는데…. 그런데 시민들은 의외로 북성로의 한숨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이 거리로 온 것이다. 이 거리와 소통하기 위해 뭘 만들고 싶었다. 도면만 있으면 뚝딱뚝딱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북성로.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니 이 공간을 상징하는 제대로 된 문화상품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공구빵 만들기에 착수하게 된다. 운 좋게 공모사업에 자기 아이디어가 채택된다. 그게 공구빵틀 제작이다. 일단 기술을 지원받아야만 했다. 50년 경력의 선일포금 최학용 대표가 그를 위해 석고로 만든 툴에 알루미늄 녹인 액을 부어 빵틀을 완성했다. 그는 그걸 상업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조금 변형시켜 최종틀을 완성한다.

2017년 8월에 빵집을 오픈했다. 빵 종류는 볼트, 너트, 멍키스패너 등 3개. 낱개 포장해 박스에 담아둔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선물로 사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구로 된 빵, 행인들도 궁금해 가게 안을 기웃거린다. 특히 일본 관광객들은 공구빵을 ‘도쿄바나나’ 정도로 반긴다.

그는 여기 들어오기 전 버려진 팔레트를 갖고 업사이클링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팔레트로 만든 텃밭 등이 그의 아이디어다. DIY워크숍도 운영했다. 공예본능이 발동해 공구로 여러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스패너 모양의 앙증맞은 작은 귀걸이도 만들었다. 볼트 손잡이가 달린 커피잔, 미니어처로 처리된 공구 등도 만들어 가게에 비치해 놓았다. 손님들이 재밌어한다. 그는 철공소 안에 들어온 느낌이 들도록 인테리어를 했다. 벽에 별별 공구를 다 걸었다. 위아래가 붙은 방진 작업복도 걸어놓았다. 군용박스를 비치해 테이블로 활용했다. ‘어르신을 배려하자’가 그의 모토 중 하나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 어르신이 쉴 수 있게 에어 컴프레서로 만든 의자도 설치했다. 마침 한 어르신이 고개를 숙이고 쉬고 있다. 보통은 가게 앞에 앉지말아달라고 말할 텐데…. 그는 북향로드라서 그런 배려는 필수라 여긴다. 종일 바닥나지 않는 그의 살가운 배려와 미소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철 사나이의 기술과 예술 융합 ‘모루’, 볼트·너트·멍키스패너 ‘공구빵’ 첫 개발
한 세기 고단한 노정을 다한 일제 적산가옥이 도심재생사업으로 이리저리 뜯겨나가고 있다. 그 흐릿한 흔적 위에 또렷한 대구미래를 밝힐 꽃 같은 건물이 들어서길 모두 기원한다.


그와 한참 얘기를 하다보니 북향로드에 어둠이 스며든다. 어쩜 이 언저리에 남아 있는 마지막 전당포가 된 ‘신신전당포’, 그 삼거리의 골목 폭은 100년전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이 지점이 북성로와 향촌동의 연결고리 같았다. 드문드문 보이던 어르신은 거의 귀가하고 없다. 적막이 돋아난다. 하지만 그 적막 위에 밤을 더 즐기는 청춘의 유쾌한 이야기 소리가 인근 다방, 카페, 식당에서 쿨하게 피어난다. 밤과 낮의 쿵짝이 리드미컬하게 흘러간다. 100년 묵은 이 골목이 한 편의 ‘애상곡’으로 보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위클리포유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