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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북성로스러운 복합문화공간 ‘소금창고’,‘대구 1호 독립책방’ 철거운명

2019-06-28

■ 북향로드를 걷다

가장 북성로스러운 복합문화공간 ‘소금창고’,‘대구 1호 독립책방’ 철거운명
7년 역사를 뒤로 하고 조만간 뜯겨나갈 대구 독립서점 1호인 더 폴락. 최성 대표의 고집스러움이 묻어 있는 여기에 오면 일반서점에서 흔히 보는 베스트셀러북 등은 찾을 수가 없다. 슈퍼을의 슈퍼갑 사연들을 담은 잡기, 단행본 등이 인디밴드 같은 포스로 앉아 있다.

북향로드는 행정동명과 법정동명, 도로명 (신주소) 등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경계가 정말 불분명하다. 북성로와 향촌동이 도로명으로는 서성로였다가 경상감영길이 되기도 한다. 향촌동인가 싶으면 북성로이고 북성로인가 싶으면 대안동이 된다. 지난 세월 행정의 손금이 복잡다단하게 엮여있다는 걸 암시한다. 그 뿌리가 워낙 튼실해 동성로와 서성로, 심지어 남성로까지도 주물러댄다. 어떤 이는 그 언저리에서 태평로, 칠성동, 달성동, 대안동, 포정동, 화전동, 덕산동, 계산동, 수창동, 대신동 등까지 읽고 간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북성로는 걸으면 도로와 주변 골목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세기 분량의 사연을 가진 온갖 건물의 변천사, 골목 족보를 기록하고 지도로 그려내고, 거리의 심벌이 될 만한 증인을 만나 채록 작업을 하고, 보고서와 백서를 내고 그걸 토대로 연극·뮤지컬을 만들고 마침내는 이웃이 주체가 되는 골목축제를 만드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반드시 돈보다 꿈이 더 고픈 문화운동가들끼리 손발이 맞아야 한다.

가장 북성로스러운 복합문화공간 ‘소금창고’,‘대구 1호 독립책방’ 철거운명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담뱃갑을 모티브로 출간한 ‘주머니시’
가장 북성로스러운 복합문화공간 ‘소금창고’,‘대구 1호 독립책방’ 철거운명
북성로에서 가장 북성로스러운 질감을 간직한 복합문화살롱 같은 소금창고가 지난 22일 문을 닫았다. 일제강점기 숱한 소금이 들락거렸을 소금창고는 그시절 천고 높은 내부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가장 북성로스러운 복합문화공간 ‘소금창고’,‘대구 1호 독립책방’ 철거운명
김헌동 소금창고 대표가 송별파티를 겸해 자신의 애장품을 경매를 통해 단골 등과 나눴다. 소금창고 내부 모습 (작은 사진).


건물 변천사·골목 족보·지도 기록 제작
문화운동가들 뭉쳐 일궈나간 연대기
북성야설 탐험전·창작뮤지컬 등 탄생
문화운동 전개‘니나노예술가팀’결성

홍대 동네잡지 같은 출판물 소개·제작
출판 마켓·전시, 다양한 문화공간 기능
최근 어르신 패션 ‘북성로 맵시’ 인기

목조·벽돌 두동으로 이어진 근대건물
카페·와인바·공연장·갤러리 복합살롱
폐관 앞 단골초대 물품 경매전도 마련



북향로드를 걸을 때마다 북성로문화를 탐험가처럼 일궈 나간 주체세력이 궁금해졌다. 삭막하기만 이 골목을 옥토로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사>시간과공간연구소를 만든 권상구씨가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원도심을 새롭게 살려낼 별별 작전을 다 동원한다. 그는 대학생들과 함께 원도심 골목을 지도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2001년 ‘대구문화지도’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골목은 살아있다’, 2007년엔 중구의 웬만한 골목길에 얽힌 지리인문학적 정보가 총망라된 ‘신택리지’까지 발간하게 된다. 그의 사인을 받고 두 번째 이 거리에 나타난 사내가 바로 북성로허브 운영주체인 <사>공동체디자인연구소 전충훈 대표다. 전 대표와 손을 잡기 위해 나타난 또 한 명의 사내는 <사>한국문화공동체(BOK)를 만든 임강훈씨다. 경북대 출신인 그는 멀티플레이어 문화운동가다. 공연기획자, 사회적기업육성사업 전문 멘토, 꿈꾸는 씨어터 이사, <사>공동체 디자인 이사, BOK 청소년 전통 예술단 총괄책임 등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다. 여기에 직접 작곡도 하고 사물악기 연주도 한다. 따로따로 문화예술을 향토사, 심지어 골목문화까지 다 뭉쳐서 인큐베이팅을 해 모든 참가 주체가 먹고사는 데서 해방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북성야설과 더 폴락

이런 주체가 있었기 때문에 북성로의 밤을 모티프로 한 ‘북성야설 100년 탐험전, 북성 밤마실’(www.masilgo.com)이 가능했고 그런 터전 위에서 미래의 북성로를 배경으로 주조업을 하는 한 남자가 죽은 아내와 똑같은 AI 로봇을 주문하면서 겪게 되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창작뮤지컬 ‘You & it’이 태동할 수 있었다. 또한 ‘어쿠스틱 살롱데이’, 공구골목의 소재로 제작한 넌버벌 퍼포먼스 ‘Hammer’, 국악밴드 ‘나릿’의 소리꾼 김수경이 자기 베이스캠프를 북성로로 옮긴 뒤 피아노 장단으로 들려주는 창작판소리 공연 ‘북성로 소릿길’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방천시장 김광석길 거주작가로 활동하면서 노래하는 김광석 동상 2개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던 손영복 조각가도 3년 전 여기로 작업장을 옮기고 벼락치기 같은 문화운동을 전개하기로 맘을 먹는다. 벽화전문가 김병호, 재즈드러머 김명환, 설치운동가 윤동희 등이 주축이 된 ‘니나노예술가프로젝트팀’을 조직한다. 그의 작업장 건물에 ‘북성로사진관’을 차린 김영호씨는 흑백사진작업에 올인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대구의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1호인 ‘더 폴락((THE POLLACK)’이 들어와 있다. 폴락은 ‘명태’란 뜻, 이들 모임 이름 또한 명태였다. 더 폴락만큼 북성로스러운 것도 별로 없을 것 같다. 2012년 10월 남구 대명3동 계명네거리 소극장 거리에서 태어난 더 폴락(대표 최성). 다섯 명의 기센 여자(최성, 손지희, 허선윤, 김수정, 김인혜)가 이상야릇한 동네서점으로 사고를 친다. 별로 답답한 게 없는지 일반 베스트셀러류 책은 팔지 않는다. 4명은 계명대 디지털영상학과 출신. 2010년 직후 홍대 앞 ‘유어마인드(YOUR MIND)’라는 독립잡지 서점과 ‘스트리트 H’란 홍대 동네잡지가 이들을 자극했다. 독립출판물을 소개하고, 직접 만들기도 하면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서기능하는 공간을 꾸리고 싶었단다. 더 폴락도 손영복 작가처럼 북성로로 옮겨왔다. 당초 5명의 운영자가 2명으로 줄었지만 7년째 기준과 원칙은 초지일관이다.

책을 일별해봤다. 일부는 잡지라기보다는 앙증맞은 포켓북, 아니 팬시용품 같았다. 현재 우리나라 젊은 감각의 수심이 어느 정도로 내려갔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제도권 안목으로는 그들의 기획 팸플릿조차 읽어내기 힘들다. 가령 지난해 10월 6~7일 열린 4회 ‘아마도생산적활동’은 이 서점의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방가르드한 행사다. 서울의 ‘언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일종의 독립출판 마켓으로 올해 5회째를 맞는다. KIND OF SUMMER, 우파파크 픽처북스, 사월의눈, 고스트북스 & 샌드위치페이퍼, 방낙타, 그레타책방, 브로드컬리, 계간홀로, 해다홍, 싯다운플리즈, 인디문학1호점, 광전사(狂傳社), 여행마을, 에이치h…. 2개층에 출판사, 작가, 제조업체 등 38토막의 전시공간을 차렸다. 이 모든 게 다 대구의 문화권에서 생산되는 흐름이다. 계명대 사진과에서 만든 외국작가들의 사진을 한데 모아놓은 ‘ZERO ONE’, 냄비 받치기에 딱 맞은 판형인 ‘냄비받침’, 가난뱅이를 위한 서바이블 지침서 같은 ‘록셔리’, 혼자서 펴낸 ‘월간 잉여’ 등이 초창기 주목을 받았다. 요즘 눈길을 끄는 책은 향촌동 어르신패션을 기록한 ‘북성로 맵시’를 비롯, ‘좀비사전’ ‘탐정사전’ ‘홈쇼핑스크랩’ 계간 ‘홀로’ ‘회사이야기(임시제본소 간)’ 디자이너와 예술가를 위한 권리장전 가이드북으로 명명된 ‘하다보면 늘겠지’, 담배갑처럼 생긴 ‘주머니시’ 등이다. 올해 아마도 생산적활동 행사는 10월12~13일.

◆곧 사라질 소금창고

폴락처럼 뉴딜사업 때문에 조만간 철거될 운명에 놓인 전방위 멀티문화카페인 소금창고의 창고지기 김헌동 대표를 만나러 갔다. 김 대표한테서 소금창고 폐관에 앞서 단골 등을 초대해 주요 물품경매전을 겸한 송별파티를 연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기자도 지난 22일 거기에 참석했다. 그는 철거구역이 아닌 곳에 있는 믹스카페 북성로에 주요 물품을 옮기고 있었다.

적산가옥이던 소금창고는 김 대표의 안목 때문에 뉴스메이커가 됐다. 메리고라운드, 엄태현씨 등 인디밴드와 버스커들은 천고가 엄청 높아 반향이 좋은 소금창고 무대를 무척 탐냈다. 북성로 북쪽 사이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이었던 소금창고는 두 동이 하나로 뭉쳐져 있다. 1907년 지어진 건 목조 건물이고 1937년 지어진 건 적벽돌조다. 창고 꼭대기 높이는 9m. 층고가 높기 때문에 울림도 더 클 수밖에 없다.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벽돌 창고의 백 스테이지 뒷벽도 예전 붉은 벽돌벽 그대론데 현재 빔프로젝트를 사용해 스크린으로 활용하고 있다. 소금을 쌓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던 계단도 공연 때는 테라스석으로 변한다. 100년 전 사용하던 도르래도 장식용으로 존치시켰다.

외지인들은 한번 와선 이 가게의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다. 레스토랑, 선술집, 와인바, 카페, 문화사랑방, 공연장, 갤러리, 클럽, 골동품전시장 등과 같은 기운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이 공간의 숨은 연출가가 있다. 문경 출신의 주인 김헌동씨. 경북대 예술대학 출신인 그는 40년간 미술과 인연을 맺어놓고도 여태 개인전 한 번 하지 않았다.

소금창고의 메뉴는 북성로가 만든 최고의 길거리음식인 연탄돼지불고기우동이다. 그도 그걸 소금창고의 시그니처 메뉴로 만들었다. 서편 창고는 와인바로 활용했고 동편 창고는 커피와 차를 팔았다. 2층에는 그가 지인들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빈둥거리며 멍때리는 놀이터가 있다.

길 밖은 전설의 홍등가 아줌마가 진을 치고 있다. 그는 소금창고 단골은 귀신처럼 알아보곤 놀다가란 말을 하지 않는 아줌마의 센스에 엄지척하면서 짠한 웃음을 내뱉는다.

조만간 다시 볼 수 없는 공간이라 여러 번 훑어보았다. 철거될 때 이 건물을 한 편에 미니어처 형태로라도 보존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지난해 12월에 문을 연 ‘코이(古意) 커피숍’이었다. 원래 북성로공구박물관이 있던 자리다. 멀리서 보면 한말 고종이 자주 들러 커피를 마셨던 덕수궁 내 정관헌의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이충열 대표는 북성로의 역사 깊은 공간이 텅 비는 것이 아쉬워 카페 오픈을 결심했다. 적산가옥의 원목을 그대로 살렸다. 오죽이 심긴 1층 창가 자리, 3인 이상이 앉을 수 있는 2층의 좌식 자리 등 명당과 포토존 등이 있어 주말에는 웨이팅이 있을 만큼 붐빈다. 예전 우유병에 담겨져 나온 얼그레이 밀크티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쇠의 거리에 쇠만 사는 게 아니었다. 조금씩 문화의 연대기가 쇠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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