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도는 민원으로, 교육활동은 책임 논란으로 이어지는 현실
반복되는 민원과 책임 부담… 교사들 ‘교육보다 사고 걱정 먼저’
학생인권 강화 속 달라진 교실… 현장선 ‘신뢰 회복 필요’ 지적
교권추락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15일 제45회 스승의 날을 맞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사제지간'이라는 표현이 구시대의 유물이 돼 간다는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 교사와 학생 사이에 흐르던 정서적 유대와 신뢰는 희미해진 반면, 그 자리를 고소·고발과 민원, 법적 책임 중심의 차가운 '계약 관계'가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학생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정당한 교육활동이 민원과 신고로 이어지는 살풍경한 현실에 깊은 위축감을 호소하고 있다.
대구 북구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이세연(가명·40) 교사는 일상적인 생활지도 자체가 이제는 교사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형벌이자 공포로 다가온다고 토로했다. 지도 과정에서 학생의 욕설이나 반항에 직면하더라도, 단호한 대응보다는 상황을 애써 외면하며 넘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자칫 목소리를 높였다가는 '정서적 학대'라는 올가미가 씌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교권 침해는 단발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교사 스스로 감정을 추슬러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수업과 학생 지도를 지속하기 위한 정신적 소진이 임계치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이 교사는 "교사로서의 권위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찰나를 경험하고 나면 다시 교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는 2년 전 한 학생의 수업 중 폭언으로 교권 침해 신고를 진행했다가 학부모의 보복성 민원에 시달리며 깊은 내상을 입었다. 당시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 끝에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은 여전하다.
이 교사는 "학교폭력은 생활기록부 기재 등을 의식해 학생들이 조심하는 분위기라도 형성돼 있지만, 교권 침해는 상대적으로 경각심이 매우 낮은 편"이라며 "반복적인 공격에 노출된 교사들은 늘 긴장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데, 이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체감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학교 현장의 황폐해진 분위기는 적나라한 통계로도 증명된다. 대구교사노조가 스승의 날을 기해 실시한 설문조사 주관식 응답을 분석한 결과, 교사들이 꼽은 가장 심각한 교권 침해 사례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 및 아동학대 허위 신고(32.7%)'였다. 학생의 물리적 폭행과 특수교육대상학생의 공격 행동(27.9%)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학부모들의 도를 넘은 간섭은 교사들의 목을 죄는 가장 큰 요인이다. 설문에 참여한 교사 중 31%가 훈육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 민원을 가장 큰 고충으로 꼽았다. 학생 간 갈등이나 학교폭력 사안에서도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거나, 교육청 신고 및 법적 대응을 언급하며 압박하는 사례도 상당수 포함됐다.
교사의 사생활 침해와 학교 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심각한 수준이다. 반복적인 전화와 야간 연락, 휴식 없는 상담 요구에 교사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학부모가 수업 중 교실에 무단으로 출입하거나 학교 시설 개방 이후 외부인이 학교를 배회하는 등 통제되지 않는 환경 역시 교사들을 위축시키는 요소로 지적됐다.
교권 침해에 대한 교사들의 생각.<인포그래픽=생성형 AI>
전문가들은 교사에게 지워진 과도한 책임의 굴레가 교육 현장의 동력을 근본적으로 갉아먹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구 월촌초 교사 출신 신민철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원은 최근 학교의 가장 큰 문제로 '무한 책임 구조'를 꼽았다. 그는 "현장체험학습 등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사고마저 교사 개인의 법적 책임으로 귀결되는 구조가 현장에 극심한 무력감을 퍼뜨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 부연구원은 이를 소방 현장에 빗대어 "법 개정 전에는 소방차가 불법 주차 차량을 밀고 지나갈 근거가 없었던 것과 같다"며 "교육활동을 보호할 최소한의 제도적 방어 장치가 마련되어야 적극적인 생활지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신문고 등 민원 절차가 간소해지며 신뢰보다 신고가 앞서는 문화가 정착된 점도 현장의 고충을 더하고 있다.
다만 최근 교권 보호를 위한 제도 보완이 이뤄지면서 변화의 기류도 감지된다. 송우용 영남공고 교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교단 분위기가 다소 안정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해당 학교의 교권 침해 사례는 지난해 18건에서 올해 신학기 이후 단 1건으로 급감했다. 송 교장은 "교권 침해가 심각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학생들이 인지하면서 스스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보다 교사와 학생이 공존하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제언도 이어진다. 교사가 해결하기 어려운 악성 민원은 학교 관리자가 전면에 나서 대응하며 교사 개인의 부담을 줄이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 송 교장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대립 관계로 바라보는 구조를 탈피하고,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스승의 날을 다시금 뜻깊게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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