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표현한다. 이 세상 만가지 물상 중에 영묘한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거리낌이 없고, 못 먹는 게 없다. 생명 유지를 핑계로 육지·바다·하늘에서 나오는 온갖 생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서 먹는다. 그 동·식물 중에는 인간의 몸에 이로운 게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양분이 100% 다 약이 되는 건 아니다. 영양분과 약리성분을 먹지만 해로운 독소들도 함께 섭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은 독소를 제거하거나 중화시켜 줄 해독제를 필요로 한다. 이 세상 식품 중에는 해독 성분 또한 많다. 알코올이 주성분인 술도 다른 독소를 중화시켜 주므로 해독제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 누군가 술을 재해석해 ‘영혼각성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파에 찌들려 무뎌지고 더렵혀진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주당들의 자기 합리화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다. 물론 주사를 부리지 않도록 처음부터 주법을 잘 배워 익혀야 하겠지만.
실제로 우리네 생은 흔들리고, 짓밟히고, 뭉개지면서 유지된다. 혹독한 시련으로 그 해맑던 영혼도 어느 새 더러워지고, 망가져 있음을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된다. 다들 혼탁해진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핑계를 댄다. 하지만 술은 해독 작용도 하지만 그 자체에 독성도 있어 몸을 다치게 한다. 그래서 냉주·독주·폭주에 대한 세간의 한자 풀이도 적확해 보인다. 맥주와 같은 찬 술은 위에 해롭다(冷酒傷胃). 양주와 같은 독한 술은 간을 상하게 한다(毒酒傷肝).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안마시면 맘 상하고 잠도 안온다(無酒傷心, 無酒不眠). 그래서 맥주에 독한 술을 섞어마시는 폭탄주는 몸에 좋다(爆酒補身). 일리 있는 해석이다.
이처럼 적당한 알코올 섭취는 인간의 신체유지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하기 쉽고 제어하지 못해 몸을 망가뜨리는 사례를 주변에서 쉽게 본다. 오히려 인간이 몸속의 독소를 빼려면 ‘독만권서(讀萬卷書)’하고, ‘행만리로(行萬里路)’하라는 말이 더 와 닿는 이유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길을 걸어볼 날이 그 언제쯤 오겠는가. 일부러 맘 다잡아 먹고 일찌감치 시도하지 않으면 체득하기 어렵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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