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며 점점 병을 얻어가고…
장애는 우리들 모두의 문제
장애인의 재능을 인정하고
일할 기회까지 준 심청처럼
눈을 씻고 맑은 눈을 가꿔야
며칠 전 끝난 ‘소년의 집’(무의탁 비행청소년 자립기관) 뮤지컬 공연 연습 중에 있었던 일이다. 10대후반의 참가자 중에 지적장애 소년이 있었다. 모두들 그 아이가 발음이 불분명한데다 뒤뚱거리는 걸음에 엉덩이까지 흘러내린 바지도 추켜올릴 줄 모르니 무대에 세우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배역을 주었더니 얼마 안 가 모든 곡의 가사와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전체 대본과 안무까지 외우는 것이었다. 다시 검사를 해보니 어둔하고 아둔하지만 지적장애는 아니란다. 어릴 적 말과 행동이 더디다며 쉽게 내린 진단 탓에 그의 뛰어난 암기력과 음악성이 지적장애라는 가당찮은 감옥에 10여년간 갇혀있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그 어떤 잠재력도 재능도 없을 것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일이다.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온 흥보의 박과는 달리 놀보의 박에서 ‘봉사, 앉은뱅이, 절름발이, 문둥이’가 줄줄이 나온다는 박타령에서 보듯, 장애는 천형이고 저주였다. 평생을 불편과 고통, 그리고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장애우들. 우리는 그들의 연약하고 상한 곳만 흉볼 뿐이지, 우리의 눈이 병들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소경 테이레시아스의 혜안을 인정하지 않았던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의 말대로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한 패륜의 죄를 지어 테베를 역병과 오욕에 물들인 죄인이 바로 자신임을 뒤늦게 깨닫고는 뜨고도 보지 못한 제 눈을 찌르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는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소소한 질병으로 일시적이지만 신체의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크고 작은 걱정거리로 우울과 혼란에 시달리기도 한다. 정정하던 사람도 늙으며 점점 병을 얻고, 장애에 시달리다 죽어간다. 당연히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고 평등해야만 한다. 연극 ‘킬 미 나우’는 그들도 보통사람의 삶을 사는 존재이며, 우리도 장애를 겪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조이는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해 제 몸도 씻을 수 없는 장애인이지만 몽정을 겪는 지극히 건강한 사춘기 소년이다. 하지만 아들을 간호하느라 절필한 전직 소설가 제이크는 척추관에 뼈가 자라는 병으로 점점 육체가 마비되고 뇌까지 전이된 상태다. 약에 취해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제이크는 아들에게 다시 한 번 쓰러지면 병원에 데리고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숨은 붙어 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자신이 비참해서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보다 못 한 조이는 아버지에게 안락사를 제안한다. 연극 ‘킬 미 나우’는 고독에 시달리고, 기꺼이 바치겠다 작정한 헌신에 지치고, 고통과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인간의 보편성을 다루면서 동시에 장애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일깨워준다.
봉사 심학규의 딸 심청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장애인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접근방식을 제시한다. 황후가 된 청이는 천하의 맹인을 다 모아 술과 안주를 먹인 후, 유식한 맹인을 골라 임금의 좌우에 모시고 경전을 외게 하고, 그 중에 늙고 병들어 자식도 없는 맹인은 경성에 집을 지어 한데 모아 음식을 먹이자고 청한다. 심청은 장애인의 곤궁을 이해하였기에 이들에게 필요한 복지정책을 구상할 수 있었고, 장애인의 재능을 인정하였기에 그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현병과 조울증이 사회적 문제가 된 요즈음, 정신장애에 대한 접근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캐나다의 예술기획사 ‘워크맨 아트(Workman Arts)’는 정신장애 예술가들에게 전문적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이들과 함께 전시·공연·축제를 개최한다. 정신질환자들의 가능성과 재능을 널리 알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고 있다. 탁하고 비뚤어진 우리의 눈을 씻고 맑은 심청의 눈을 가져야 할 때다.
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 연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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