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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나는 아침이면 조그마한 베란다로 나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이제 세상이 막 깨어나서 하늘이 파랗게 피어나기 시작하고 공기가 청명해서 하늘이 더욱 크게 보이고 그 큰 하늘에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울려 퍼질 때이다.
하지만 몇 년 전 우연히 목격한 사건이 오래도록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베란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300m가량 떨어진 농가에서 가끔 짖곤 하던 누렁이가 개장사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본 뒤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소하게 치부되는 희생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우리의 영혼 어딘가에 상처가 되어서 살아가는 동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상처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만, 상처는 조금씩 극복되어야 하고 치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감각'을 우리의 영혼에 조금씩 자리 잡게 하는 일이다. 새로운 감각은 시대에 편승한 처세 같은 것은 아니다. 민감함을 바탕으로 세상을 느끼는 방법을 기르는 일이다.
환경과 생태에 대한 민감함은 최근 들어서 생긴 사회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정서적으로 그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렇듯 '새로운 감각'은 시대의 첨예한 과제들을 안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감각'은 공동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가늠하는 잣대다. 새로운 감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우리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 수 있다.
변화된 세상은 미술가들에게도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젊은 미술가들은 선배들과는 다른 자기식대로 세상을 모색한다. 그들은 다른 활동방식을 택한다. 학교의 교육과 사회적 제도는 새로운 길과 새로운 영토를 탐색하는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감각을 수용하는 곳은 제도권이 아닌 다른 공간, 혹은 그들 스스로 살길을 찾아가는 활동방식일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 새로운 길과 새로운 미술의 영토가 만들어진다.
그런데도 소위 '대안적 활동'을 자처하는 젊은 미술가, 기획자들이 어쩔 수 없는 자신들의 '새로운 감각'에 따르지 않을 때를 종종 본다. '대안'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기성'이 되었고 치열한 일자리 전쟁에서, 간혹 미술계의 경우 '대안'이라는 건 인턴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새로운 일 년을 준비하는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새로운 감각'에 진실하고 충실한 미술과 활동을 만나고 싶다.
최성규 (시각예술가)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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