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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혜〈대구문학관 학예연구원〉 |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거나 책은 말 없는 스승이라는 명언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명언대로 책의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기는 것 아닐까. 그렇지만 때로는 사람도 책에 무언가를 남긴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문학을 연구하게 되면서 새 책보다는 중고서적을 더 자주 접하게 됐다. 문학관 책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손을 거친 책이다. 중고 책에는 소장자의 흔적이 어떤 식으로든 남는다.
재미있는 건 중고 책에 남은 흔적은 소장자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소장자의 애독서일수록 그렇다. 잦은 독서는 잦은 흔적을 남긴다. 책을 읽으면서 차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은 책에 물방울 흔적이나 음식물의 흔적을 남긴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는 버릇이 있는 사람의 책에는 책의 모서리가 미묘하게 파이거나 운 흔적이 있다. 책에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그 부분이 유난히 잘 펼쳐진다.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버릇은 제법 흔하지만, 때로는 책의 내용에 직접 첨삭하거나 손수 내용을 고쳐 적는 경우도 있다. 그런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은 아마 글을 쓰는 훈련을 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글을 남기고 싶은 열망이 강한 사람이리라.
책은 사람의 소중한 마음을 보관하는 창고가 되어주기도 한다. 중고 책의 내지에서 책을 선물하는 마음을 정성스레 적은 글귀를 발견할 때면 누군가의 소중한 마음이었던 이 책이 어떤 경로를 거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되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빛바랜 사진, 부스러진 네 잎 클로버, 지폐 몇 장이나 통장처럼 아무에게나 보여주고 싶지 않고 개인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누군가의 마음이 중고 책에는 흔적으로 녹아있다.
이런 일을 생각할 때면 책은 사람이 쓴 글을 기록하여 읽히기를 기다리는 일방향적인 매체에 그치지 않는다는 상상을 한다. 책을 읽을 때, 책도 사람을 읽는 것은 아닐까. 마음속에 읽은 책들이 남듯이, 책에도 책을 읽은 사람들이 남으니까. 그렇게 책이 읽은 사람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새 책에서는 절대 느껴볼 수 없는 중고 책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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