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하미 〈연출가〉 |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 서울 명동에 개관해 40년이 넘게 운영되어 온 역사 깊은 극장이다. 수많은 젊은 연극인의 실험실이자 발판이란 의의를 갖고, 대한민국 소극장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그 역사와 의미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검색해보니 그렇다고 한다.
지난달에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을 올렸다. 막연히 유서 깊다고만 알았지, 연극인들 사이에서 그곳이 체감상 어떤 의미일지는 막 상경한 내가 알 턱이 없었다. 다만 짐작할 수 있었던 한구석이 있었는데, 분장실 흰 벽에 자리한 낙서들이었다. 각종 공연 제목과, 참여자들의 이름과, '아모르 파티-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문구와, '우리들의 얘기가 마지막 장을 향하네 안녕' 같은 소회들이 제각각의 모양으로 씌어 있었다. 보자마자 김영하 작가의 '자아도 사랑도 불안정하니까 안정돼 보이는 곳에 흔적을 남기고 싶은 거죠'라던 말이 떠올랐다.
연극인의 작업은 참 불안정하다. 웬만큼 규모 있는 무대가 아니고서야 공연으로만 먹고살려면 정말 '빡세게' 일해야 한다. 오전·오후·저녁 타임으로 나누어 각 다른 작품의 연습을 하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자면 만나는 작품 모두가 매번 가치 있고 빛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대한 그러고자 노력할 뿐이지. 다행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극장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곳에 섰던 예술가들이 그런 마음에 흔적을 새기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8월 초 서울은 내내 비가 내렸다 그쳤다 했다. 더위에 강한 나지만 물속을 걷는 것만 같은 습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연극을 8년 했지만 당해낼 재간이 없는 상황들도 있었다. 모든 꿈이 응원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하필 내가 노 없이 던져진 쪽배 같던 여름이었다. 그래서인가 분장실의 낙서들이 자꾸 떠올랐다. 삼일로에 닻을 내렸다 떠난 그 삐뚤빼뚤한 배들이 어느 빗속을 표류하고 있을까 마음이 쓰였다.
더 이상 어렵다고 말하면 민망할 만큼 길어진 시국이다. 감사하게도 가을바람 맞으며 오늘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삐뚤하든 빼뚤하든 살아남아 그들 모두를 다음 어느 무대에서 만나 뵙기를 소망한다.
이하미 <연출가>
박진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