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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미〈연출가〉 |
사촌끼리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반가워 애들끼리 방에 모여 이불 깔고 수다 떨고, 게임도 하다 보면 금세 밤이 깊어진다. 놀기에 밤은 너무 짧다는 걸 잘 아는데도, 이미 낮부터 논 탓에 더 버티질 못 하고 꾸벅꾸벅 졸다 잠든다.
"일어나라! 밥 다 차려놨다! 할머니도 너거 기다리신다!"
단꿈을 와장창 깨우는 소리에 눈만 겨우 뜨는 애가 둘,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는 애가 둘. 30분 정도 실랑이를 하다가 등이랑 엉덩이를 두드려 맞아야만 몸을 일으킨다. 투덜대며 고양이 세수만 후다닥하고 밥상 앞에 앉는다. 그럼 상석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너거는 어린 아들이 뭐 그래 잠이 많노? 기다리다 뱃가죽 다 들러붙었다" 하시는 게 우리 집 명절 레퍼토리다.
더불어 사촌 동생이 고구마전을 좋아한단 이유로 20년째 명절 상에 고구마전이 빠진 적이 없는데, 이번에 그가 대가족발표를 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저는 사실… 고구마전 좋아한다고 한 적 없어요." 온 식구가 놀라자빠졌지만, 아마 앞으로도 고구마전은 명절 상에서 빠질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너무 오래 부쳐왔기 때문이다.
'일상'의 속성이 이렇다. 소중한 명절 풍경들처럼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꾸준히 쌓여가는 것, 계속 굴러가는 것 또한 명절 고구마전처럼 쉽게 바꿀 수 없는 것. 개인·가족의 단위 안에서 역사와 같은 의미이며, 세월의 뿌리 같은 것이다.
최근에 우리는 '일상이 바뀌고 있다'는 문장을 자주 접한다. 언뜻 체감이 잘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짚어보면 참 커다랗고 무서운 말이다. 일상의 풍경은 거대한 것들만이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환경·사상·경제·정치처럼 우리가 다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거대한 시류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거부할 수 없는 것. 최근의 우리의 일상을 바꾼 것이 코로나19라는 대규모 전염병이듯.
이번 추석 풍경에서는 마스크가 빠지지 않았다. 재난 문자는 계속 울렸다. 소규모로 조심스레 모였으면서도 '이래도 되나'하는 죄책감도 늘 도사려 있었다. 이 풍경이 하나의 현상일 뿐 일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일상의 소중한 풍경들이 망가지지 않기를 원한다. 나는 휩쓸리거나 적응할 수밖에 없는 작은 개인이라서, 잘 부친 고구마전을 닮은 보름달에 그렇게 소원을 빌었다.
이하미〈연출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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