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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연 〈작곡가〉 |
대구에서 활동하는 음악가 중 개량한복을 입고 클래식 음악을 하는 작곡가가 있다. 누구든 만나면 악수를 청하고 다도를 즐기는 이분은 현대 클래식 음악에 심취한 선배 작곡가다.
몇 해 전, 이 선배와 대학 캠퍼스에 있는 동산을 산책한 적 있다. 길을 걸으며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선배는 눈을 감더니 잠시 후, 내게도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무슨 소리를 들으라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보았다. 차분해지는 내 호흡을 뒤로하고 피부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고 있을 때 더욱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순간, 그 힘찬 바람이 내게 몰고 온 것은 바로 위풍당당한 자연의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바람의 강약과 나뭇잎의 크기에 따라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리는 마치 자연이 내게 들려주는 각양각색의 음악과도 같았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던 내게 선배는 지금 이 순간이 음악가로서 고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순수작곡가로서 그가 가진 고된 삶과 그의 진중한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클래식 전공자들은 음악의 상업성을 떠나 전업 음악가로 활동하는 데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에 정부 문화기금을 신청하거나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활동을 겸직하며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한다. 또한 이들은 음악 협회나 단체를 통해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외국 음악가들과 문화교류를 하여 수준 높은 국제음악제를 주최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대구에도 이미 역사가 깃든 음악제들이 있는데 이러한 역사는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닌 많은 음악가의 끊임없는 열정과 헌신으로 이루어낸 저력이며 문화적 자부심과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 여파로 다양한 문화 공간이 폐쇄되고 음악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많은 음악인의 활동 무대가 사라지고 있다. "음악은 나의 생명이며 나는 연주하기 위해서 살고 있다"는 루이 암스트롱의 말처럼, 우리에게 음악은 삶 자체이며 호흡이므로 이 어려운 상황에도 자신의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곡을 쓰고 연주를 한다. 나와 내 동료들은 베토벤의 계보를 잇기 위해 위대한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의 법칙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며 현대 클래식 작곡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클래식 음악가들은 현재의 험난한 위기와 상황도 새로운 가치를 더해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것이고,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음악 지평을 열 것이다.
이정연 〈작곡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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