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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문학] 자서전들 쓰십시다

2020-10-15

텍스트 아래 혐오 댓글 난무
임자없는 말의 유령들 섬뜩
실체없는 글쓰기 중단하고
용기를 갖고 자신의 삶 성찰
진실을 기록하는 글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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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연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말과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졌지만, 때로는 그 말과 글이 아득하고 섬뜩하게 느껴진다. 특정 사안을 정쟁으로 몰아가는 이들의 말과 글이 TV나 신문, 각종 포털에 가득하고 그 텍스트 아래 혐오성 댓글들이 난무한 것을 발견할 때 참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각종 현안에 대한 대책 없는 말과 글이 쏟아지는 요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떠도는 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소설가 이청준은 '떠도는 말들'을 비롯하여 여러 편의 소설에 '언어사회학서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언어에 대한 탐색을 시도하였다. '언어사회학서설 2'라는 부제가 달린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화자(話者)는 잘못 걸려온 전화, 신문과 라디오 전파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바퀴벌레처럼 금세 소굴을 튀어나오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말들" "고함을 치거나 혹은 엄살을 떨면서 스멀스멀 종이 위를 간지럽히며 기어다니는 신문지의 활자어들" "뱀처럼 음흉스럽고 쉴새없이 꼬리를 뒤흔들며 쏟아져 나오는 라디오의 전파음들"로 표현하며, 이를 "임자 없는 말의 유령들"이라고 언명했다.

말들은 과연 이제 정처가 없었다. 말이 존재의 집이라면, 말의 집은 또한 존재의 실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말들은 이제 그 실체의 집을 떠난 지 오래였다. 집을 떠난 말들은 그가 깃들였던 실체와의 약속을 잊어버린 지도 오래였다.(…) 말들은 정처도 없었고 주인도 없었다.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호구지책으로 자서전을 대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글쓰기가 '실체도 없는 언어'를 부리는 작업임을 깨닫는다. 그는 과거의 상처와 실패를 미화하는 데 자서전의 목표를 두거나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자서전을 쓰려는 고객들의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실체 없는 글쓰기를 중단하고자 한다. 소설에서 '자서전들 쓰십시다'는 대필과 연계되어 반어적으로 쓰이지만, 자서전을 통해 언어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존재의 실체를 담보하는 진정한 자서전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자서전은 자기에 대한 글쓰기, 즉 자기가 주체이자 대상이 된다. 자서전은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만나는 자기성찰의 과정을 통해 과거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주체로 서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난 상처와 과오를 거리 두어 바라보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또 그것을 진실하게 기록하여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말할 용기. 따라서 자서전은 자신을 우상화하여 세상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기성찰과 용기로써 진실을 기록하는 글이어야 한다.

필자는 요즘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주관하는 인문 심화 프로그램인 '도서관 지혜학교'에서 자서전 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12주 수업을 마치고 각자의 자서전을 출간하고자 하는 수강생들과 과거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매시간 과제로 제출하는 그분들의 글에는 힘들고 서러운 시간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어른아이'가 서 있다. 그 '어른아이'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상처와 씨름하면서 그 시간을 건너온 자신을 위로하는 중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그들의 여정과 그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이 칼럼의 독자들께 이렇게 권면하고 싶다. 자서전들 쓰십시다.
배지연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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