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장미진〈미술평론가〉 |
대구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조덕현 작가(제20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의 그림을 보고 문득 회화의 근원에 대한 플리니우스의 기록이 떠올랐다.
플리니우스가 지은 '박물지'에는 한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려 하자 그를 붙잡아두기 위해 벽면에 비친 그의 그림자를 따라 윤곽을 그린 것이 회화의 기원이고, 그 윤곽에 진흙을 발라 부조로 만든 것이 소조의 시원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상 모든 그림은 사람과 풍경과 삶의 흔적들이며 부재(不在)의 그림자지만 실재보다도 더 생생하게 현실을 반영하면서 수많은 말을 품고 있다.
조덕현 작가는 전시공간 전체를 캔버스로 삼아 특유의 서사구조를 만들어낸다. 통로를 통해 어둠 속에서 만나게 되는 작품들은 마치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붙인 콜라주처럼 보이지만, 과거와 현재의 삶으로 이어지는 시대의 그늘과 빛을 모두 연필로 세밀하게 그렸다.
수많은 사람의 초상과 삶의 흔적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투영되고 있다. 옛날 사진들을 액자에 넣어 첩첩이 쌓아놓은 작품도 모두 연필만으로 그린 기억의 구조물이다.
오랫 동안 전국의 산천과 마을을 답사하면서 사라져가는 삶의 흔적들을 추적해온 작가는 이번에는 주로 경북의 내성천 주변의 풍경을 중심으로 그곳에서 옮겨온 모래로 세월 속에 마모된 기둥과 같은 거대한 조형물도 설치해 놓았다.
전시공간 속에는 동서양과 한국의 역사와 함께 마을과 개인의 역사가 동시에 소환된다. 그런데 역사 속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억은 마지막 작품에서 보듯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람 속 대나무 줄기와 이파리처럼 늘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전시 주제가 '그대에게'인 것은 그가 관객인 '그대'에게 말을 걸고 서로의 기억을 불러내 대화를 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다. 그대와 나의 모든 기억이 그림자와 흔적들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을 잡아내는 작가의 화폭은 넓고도 깊다. 그의 그림들은 '그대에게' 말을 걸고 따뜻한 위안을 줄 것이다.
장미진〈미술평론가〉
박진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