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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투구?…예술을 건축으로 데려 온 남자...대구 건축의 전설 '厚堂 김인호' 1

2020-11-13

불시착한 UFO같은 경북실내체육관
기존공법 역행, 대구 건축 여명 밝혀
잠실야구장·대구시민회관·道청사…
익숙한 건축물 상당수 그의 손 거쳐
한국美 활용 현대 건축 신지평 열어

UFO? 투구?…예술을 건축으로 데려 온 남자...대구 건축의 전설 厚堂 김인호 1
1966년 대구 1세대 건축가의 리더격인 김인호가 설계한 지역 첫 고난도공법의 경북실내체육관(현 대구체육관). 흡사 불시착한 UFO 같은 이 체육관이 준공됐을 때 일반인에겐 무궁한 호기심을 발동케 한 충격 그 자체의 랜드마크였다. 수많은 곡률을 고차미적방정식처럼 풀어야 했다. 사찰의 일주문, 화랑의 투구 이미지, 그리고 한옥의 보와 서까래, 추녀의 곡선을 혼융해 콘크리트로 구현해야만 하는 고난도 공법이었다. 대구 건축뿐만 아니라 한국 건축의 신지평이기도 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무척 뜻깊은 기념전을 열었다. 개관 30주년을 맞는 예술회관의 설계자인 후당(厚堂) 김인호(金仁鎬·1932~1988). 그의 건축 인생을 재조명해보는 기획전이다.

나는 이 기획전을 보기 전 지난 한 세기 대구를 수놓았던 근대건축물의 파노라마를 음미해보았다. 1902년. 앞산 정상부에서 대구를 내려다보면 크게 보이는 구조물은 대구읍성과 당시 읍민들에게 '뽀족집'으로 불렸던 계산성당, 그리고 청라언덕에 들어선 선교사건물(블레어·스윗즈주택) 정도.

1905년 경부선이 완공된다. 한반도의 동서간이 크레바스처럼 벌어진다. 1930년대 비로소 대구에 상업시설의 백미랄 수 있는 백화점이 위용을 드러낸다. 북성로 초입 미나카이, 동아백화점 네거리 모퉁이에 이비시야, 서성로 무영당(6·25전쟁 때는 영남일보 사옥) 등이다. 중구 진골목(일명 서부자 골목)에 있는 정필수 소아과 건물은 지역 첫 서양식 2층 양옥으로 기록된다. 연이어 대구역 옆엔 대구공회당(훗날 대구KBS사옥, 이후 대구시민회관, 현재는 대구콘서트하우스), 키네마구락부(6·25전쟁 중에는 국립극장, 훗날 한일극장), 50년대까지 대구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고 해봐야 모두 5층 미만이었다. 그런데 69년 대구백화점이 10층 빌딩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 그해 동대구역도 어설프게 준공된다.

UFO? 투구?…예술을 건축으로 데려 온 남자...대구 건축의 전설 厚堂 김인호 1
한국미를 삽입한 현대건축의 신지평을 열어 갔고 경북체육관, 대구문화예술회관 등 대구의 굵직한 건축물에 관여한 후당. 그는 불교와 유교, 한학을 두루 통섭, 건축사를 넘어 현자처럼 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쟁쟁한 제자들이 기념사업회와 작품집, 그를 위한 건축상 등을 마련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다. 그해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한옥은 된서리를 맞고 만다. 초가는 초라함의 대명사로 찍혀 개량형 가옥인 슬레이트집으로 교체된다. 기와를 얹은 고래등 같은 한옥도 70년대까지만 해도 부자의 상징이었지만 점차 양옥과 아파트한테 밀려난다. 동시에 다가구주택시대가 열린다. 1970년 대구 첫 시영아파트인 동인시영아파트, 그리고 73년 대한주택공사가 국내 첫 주공아파트인 서울 반포주공아파트를 론칭한다.

70년 초를 장식한 두 빌딩. 그건 중구 남일동 중앙네거리 모퉁이에 자릴 잡은 대구은행 본점(10층)과 동아백화점이다.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최고층 빌딩이 경쟁적으로 지어진다. 86년 한강변에 한국 최고의 빌딩인 6·3빌딩(현 한화63시티), 92년엔 우방타워(이월드 83타워)가 남산타워(236곒)에 이어 국내 두 번째(202곒) 높은 타워로 우뚝 솟아난다.

건축물은 건축가와 짝을 이룬다. 일제강점기엔 박길룡(1898~1943)이 최초 근대 건축가로 기록된다. 제대로 된 건축가는 광복 직후부터. 김중업(1922~1988), 김수근(1931~1986), 이희태 등이 등장한다.

이 대목에서 나타난 르네상스맨적 유전자를 가진 후당. 취재 전 후당에 대한 나의 사전 지식은 '지역 건축가 중에 김인호라는 인물이 있었다' 정도였다. 관련 기록 등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후당의 진면목을 절감하게 됐다. 대구건축사의 여명기를 밝힌 그의 스승 정경운(앞산 충혼탑 등 설계)과 함께 경북도청사를 설계하던 59년부터 이후 23년간 대구시민회관, 서울 잠실야구장, 대전 충무체육관, 불국사, 해인사와 황룡사 등 가장 한국적인 것과 가장 현대적인 건축의 하모니를 위해 뛰었다.

가장 김인호스러운 건축은 뭘까? 북구 산격4동 옛 도청 바로 동편으로 차를 몰았다. 흡사 구암서원이 있는 연암산 자락에 불시착한 UFO 같은 모습의 경북실내체육관(71년 개관·84년 9월부터 대구체육관). 1966년 후당이 주도한 체육관 설계안이 전국현상공모에 선정된다. 이후 5년 이상 지속된 난공사는 기존 공법을 역행하는 나날이었다. 산격동 황량한 언덕에 세워진 뒷동산만 한 체육관, 당연히 연일 화제였다. 당시 그렇게 큰 구조물은 대구시민운동장 정도. 그런데 그런 규모의 공간을 실내체육관 스타일로 만든다는 것은 후당으로서도 '미션 임파서블'. 국내에서는 참조할 만한 모델이 없었다. 그는 '길 없는 길'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글=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제공=장용근 사진기록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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