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리디노미네이션 비용 최소 2조6천원에서 최대 10조원까지 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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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발행된 한국은행 1000원권과 100원권. (DGB대구은행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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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에서 세종대왕으로 도안 인물을 변경 발행한 1천환권. (DGB대구은행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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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5월16일 발행해 2차 통화조치로 유통 정지되기 전까지 25일간 사용된 최단명 지폐. (DGB대구은행 제공) |
화폐개혁 즉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은 우리나라에서 15년 전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환율이나 고액권 화폐 발행, 도안 변경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화폐개혁의 단골 소재가 됐다. 편의성·화폐위상 제고 등 장점이 명확함에도 사회적 비용으로 인해 아직은 신중론이 앞서는 분위기다. 한국은행도 한 발 물러서 사회적 합의를 모은 뒤에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경기침체에 따른 내수부양을 위해서라도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할 때가 됐다"며 화폐개혁 논의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올해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역시 "지금 안 해도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고 시기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폐 단위를 바꾸기 위한 법적 절차는 복잡하다. 통화단위를 규정하고 있는 한국은행법 뿐만 아니라 조폐규정과 교환비율 등도 정해야 하고, 현금인출기(ATM)와 같은 전산상 법적 기준 변경도 불가피하다. 또 위·변조 방지를 위한 기준도 변경된다. 한국은행은 이를 위한 준비 기간만 약 10년 넘게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리디노미네이션을 위한 비용이 최소 2조6천 원에서 최대 10조 원까지 추산했다.
한국 1953·62년 두차례 이뤄져
정치적 목적 위해 진행된 아픔
홍남기 "사회적 충격 큰 사안
사전 연구·국민 공감대 필요해"
21세기 들어서 11개국이 단행
터키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혀
액면가 변경하며 물가 안정도
실패한 국가는 화폐 신뢰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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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장군 영정 도안이 친일 행적 화가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으로 확인돼 정부가 표준영정 지정 해제를 추진하면서 한국은행이 도안 변경을 고민중인 100원짜리 동전. 연합뉴스 |
리디노미네이션은 '다시'(Re)와 '화폐액면 단위 절하'(Denomination)를 합친 단어로, 화폐 액면가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바꾸는 일이다. 이를테면 1만원을 10원, 1천원을 1원 등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화폐개혁의 일종이긴 하지만 단순히 단위에서 '0'의 숫자만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화폐 가치 자체가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는다. 새로운 1원은 기존 1천 원의 가치를 갖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달러와의 교환비율이 4자리다.
국내에선 지금까지 두 차례의 리디노미네이션이 있었다. 두 번 모두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진행된 아픔이 있다. 1차 리디노미네이션은 1953년 2월15일 '대통령 긴급명령 제13호'로 시행했다. 당시 한국전쟁 여파로 생산활동이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계속적인 군사비 지출 등으로 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 혼란이 커지고 대외가치도 폭락한 상황이었다. 이에 화폐 액면금액을 100대 1로 절하하고, 화폐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100원=1환)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2차 리디노미네이션은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에 단행됐다. 재정적자가 쌓이고 인플레이션은 치솟는 등 경제가 침체되면서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1962년 6월, 단위를 다시 '환'에서 '원'으로 변경하고 10환을 1원으로 교환해 화폐가치를 10분의 1로 낮추는 통화조치를 시행했다. 500원권, 100원권, 50원권, 10원권, 5원권, 1원권을 발행했다.
2차 화폐단위 조정은 지하경제자금을 끌어내 경제개발 계획에 필요한 산업자금으로 활용하는 한편 과잉통화를 흡수하는 등 인플레이션 수습이 취지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화폐개혁에 국민은 크게 동요했지만, 지하자금 회수율도 높지 않아 사회·경제적 불안감만 키웠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최근 리디노미네이션에 관한 논의의 불씨를 지핀 곳은 한국은행이다. 2004년 당시 박승 총재는 화폐 액면가를 동일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해 편의성을 높이고 원화의 대외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당시 한국은행은 "1000대 1로 화폐 액면 단위 변경을 해도 '전' 단위가 도입되므로 물가 걱정은 없다. 비용은 최대 2조6천억 원인 반면 효과는 5조원 이상"이라는 연구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브레이크를 건 쪽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당시재정경제부)였다. 물가불안을 우려해서다. 기재부의 반대 입장은 지금도 확고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사회적 충격도 큰 사안이고 국민적인 공감대도 필요하며 사전 연구도 필요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 성공 사례는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에 성공한 국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60년 이후 리디노미네이션 사례는 60회가 넘는다. 한국을 포함해 프랑스·핀란드 등 유럽 선진국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리디노미네이션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세기 이후 지속된 인플레이션으로 크게 낮아진 프랑스 화폐의 가치를 이전 수준으로 까지 회복시킨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다.
21세기 들어서 터키·루마니아 등 11개국이 화폐단위를 바꿨다. 그 중에서도 터키는 대표적인 화폐개혁 성공 사례다. 화폐 액면가를 변경하면서 물가 안정도 이뤘기 때문이다. 터키는 2005년 1월부터 기존 화폐를 100만분의 1로 낮추는 동시에, 화폐 명칭 또한 리라에서 신(新)리라로 바꿨다. 2001년 68.5%까지 달했던 터키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05년 8.2%로 내려갔다.
옛 소련 공화국이었던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리디노미네이션에 성공한 국가로 인정받는다. 달러 등 여러 통화가 유통되면서 공식 환율과 실제 시장 가격 간에 차이가 벌어졌던 투르크메니스탄은 2009년 기존 화폐를 5천분의 1로 절하하며 새로운 화폐 체계를 정립했다.
2013년 국제통화기금(IMF) 컨설팅 전문가인 오케 론버그는 '금융 및 발전 보고서'에서 "여러 면에서 2008~2009년 투르크메니스탄의 화폐 개혁은 다른 나라의 모델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들 국가 외에도 루마니아·아제르바이잔 등도 리디노미네이션 성공 사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이 갖고 있는 자금 유출이나 물가 상승 압력, 국민 불안심리 자극 등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한 곳도 적지 않다. 짐바브웨와 북한, 베네수엘라 등은 리디노미네이션의 역효과를 잡지 못하고 화폐개혁에 실패한 국가라는 불명예를 남겼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사회 혼란과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 하락만을 가져온 것이다.
짐바브웨는 2006부터 3차례에 걸쳐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 하지만 연 2천만%에 달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했다. 특히 2009년 짐바브웨 정부는 '1조대 1' 화폐액면가 변경을 시도했으나 자국 화폐에 대한 신용만 낮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도 화폐개혁 실패 사례다. 2009년 화폐가치를 100분의 1로 낮췄지만 식량수급 불균형 등 사회혼란만 겪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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