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로 자리잡은 '가상인간 마케팅'
롯데홈쇼핑은 최근 자체 가상모델 '루시' 상용화 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밝혔다. |
코로나19로 비대면 온라인 활동은 이제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은 비대면 온라인 교육 및 강의에 익숙해졌고, 직장인들은 재택근무 및 화상회의만으로도 업무가 가능하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중장년층 또한 스마트폰과 친숙해지면서 은행 업무 및 쇼핑 등 필수적인 활용법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일상의 온라인화는 인터넷 환경과 스마트폰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더욱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다. 이들은 'MZ세대의 놀이터'라 불리는 가상공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한다. 현실과 가상의 벽은 코로나19 이후 급속도로 허물어지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 속에 주목받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가상인간'이다. 가상인간은 이미 각종 미디어 속 광고에 등장하며 높은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실제 인간과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이름뿐만 아니라 나이, 성격, 취향 등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으며 콘셉트와 잘 맞는 기업 광고를 제작하기도 한다. 인간보다 더 매력적인 가상인간의 인기에 유통업계뿐 아니라 다양한 기업이 이들을 모셔가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보험회사 TV광고로 얼굴 알린 '로지'
톱모델만 한다는 뷰티광고 등 섭렵
SNS로 팬들과 소통하며 제품 홍보
롯데홈쇼핑 '루시' LG전자 '김래아'
기업체별 자체 모델 제작도 잇따라
광고주 요구사항 무한대 수용 가능
미디어 공간 속 가상인간 가치 높아
◆사이버 가수 '아담'부터 인플루언서 '로지'까지
7080세대에게 가상인간을 묻는다면 문득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을 것이다. 1990년대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 사이버 가수 '아담'이다. 1998년 데뷔한 아담은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가상인간으로 음반을 내며 가수로서 활동했다. 그의 음반은 판매고 수십만 장을 올렸고 팬클럽뿐 아니라 당시 인기 가수의 척도라 할 수 있는 다이어리·책받침 등 다양한 '굿즈'가 판매되기도 했다. 또한 키 178㎝에 몸무게 68㎏이라는 구체적인 신체 프로필과 함께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등 확실한 콘셉트와 세계관을 가지고 등장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캐릭터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고, 비용 대비 수익성 등 기술적 한계를 이유로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담이 사라지고 20여년이 지난 현재 미디어는 또다시 가상인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물은 콘텐츠 크리에이티브그룹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에서 내놓은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ROZY)'다.
로지는 인플루언서답게 자신만의 소셜미디어(SNS)를 바탕으로 화보나 개인 일상 및 댓글, 메시지 등을 통해 소통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5만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명 기업에서 광고 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로지와 같이 3D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인간은 해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릴 미켈라(Lil Miquela)'로 인스타그램 팔로어 300만 이상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초 디지털 패션모델 '슈두(Shudu)'와 가상 뮤지션 '버뮤다(Bermuda)' 등이 각종 패션 및 뷰티 브랜드와 협업하며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담과 같은 '캐릭터'가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거나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가상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와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각각의 콘셉트와 소통 방식을 설계해 구현하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이지만 '하나'의 객체로서 평가받는 것이다. 아담의 활동은 누구나 '사이버' 가수라고 평가하지만 로지의 활동을 본 누군가는 실제 인간이 활동한 것이라 받아들일 수 있을 수준으로 가상과 현실이 맞닿아 있는 것이다.
가상인간 '로지'는 소셜미디어를 바탕으로 개인일상을 공유하면서 활동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
◆'로지'는 누구?
로지의 정식 이름은 '오로지'로 오직 단 한사람이라는 의미다. '하이퍼 메타'라는 가상세계에서 태어났으며 현실 세계에서 국적은 따로 없지만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생일은 한국에 정착한 8월19일이다. 이외에도 로지는 굉장히 세부적인 부분까지 기획된 가상인간이다. 가상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오면서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곳은 아프리카이며 인간과의 소통 정보를 차곡차곡 모으면서 한국에 도달했다. 하이퍼 메타에 있던 시절 오염으로 황폐해진 지구의 미래를 본 기억 때문에 MZ세대 관심사인 환경문제를 체감하고 있으며 플라스틱을 싫어한다. 본인의 이름을 건 무언가를 해내는 것을 이루고 싶은 꿈으로 꼽고 있으며, 영원히 늙지 않지만 마음이 시들지 않는 자신으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넓혀가고 있는 가상인간 활동 영역
가상인간 로지가 이름을 널리 알렸던 계기는 지난 7월 한 보험회사 TV 광고에 등장하면서부터다. 그가 나온 광고 영상은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실존하는 인물인 줄 알았던 많은 이들은 로지가 가상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가상인간이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중요한 이유는 '비인간성'에 있다. 이들은 광고주가 원하는 거의 모든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있다. 시공간 제약이 없으며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보여지는 부분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 공간에서 의도한 대로 구현할 수 있는 가상인간의 가치는 점차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장점에 힘입어 로지는 식품업계는 물론 톱모델만이 할 수 있는 뷰티 광고까지 섭렵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5월에는 한국관광공사 케이프렌즈로 선발돼 한국 문화와 관광 콘텐츠 홍보를 시작했으며, 자동차 기업 쉐보레와 함께 신형 볼트EV를 홍보하기도 했다.
또한 로지는 지난 4월부터 아모레퍼시픽 '헤라' 블랙쿠션 홍보를 하며 상세한 사용감을 표현하는 SNS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이외에도 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 친환경 포장재 낫랩을 스카프톱으로 두르는가 하면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 '고고챌린지'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국내 유통기업에서 자사 브랜드를 홍보하는 가상인간을 직접 제작하는 사례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롯데홈쇼핑이 지난해 9월 개발에 돌입해 지난 2월 처음 공개한 '루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롯데홈쇼핑은 최근 미디어그룹 NEW 계열사의 메타버스 기술 보유 기업인 '엔진비주얼웨이브' 및 카이스트 '인공지능연구소'와 함께 업무협약을 맺고 가상모델 루시 상용화 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밝혔다. 실제 인간이 촬영한 사진에 가상 얼굴을 합성하는 방식을 주로 선보이는 루시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얼굴을 알리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1월 CES 2021에서 23세 여성 음악가 가상인간 '김래아'를 내세워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김래아는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며 실제 팬들과 소통하고, 이질감 없는 기술 구현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기술의 발달로 가상공간 속에서 실제와 같은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가상과 현실을 엄격히 구분했던 기존 트렌드와 달리 이제는 누구나 의도하는 대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시대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
김형엽기자 khy@yeongnam.com
김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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