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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 헌법재판소를 경주로 옮기자

2021-09-08

독일 역사도시 카를스루에

연방헌법재판소가 자리해

정치·경제·지역 중심지보다

평범한 주민의 일상 품은 곳

시민 관점 헌법해석에 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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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5(재동 83).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현 주소지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청와대 쪽으로 가다가 경복궁 앞에서 우회전한 뒤 안국역 사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북촌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유럽식 신고전주의 건물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살던 지역 한복판의 이 자리는 개화파 영수 박규수의 집이었고, 강남으로 옮기기 전까지 경기여고가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헌법재판소는 정당 해산과 대통령 탄핵 파면을 잇달아 결정하면서 명실공히 최고헌법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 권력이 최종적인 헌법해석권에서 나오는 점을 생각할 때, 아직 한 가지 근본 질문은 제기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헌법재판소가 있는 곳은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해석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일까. 1990년대 중반의 어느 여름, 나는 박사과정생으로서 학위논문 자료를 찾으러 독일 마인츠 대학에 있었다. 주중에는 진종일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지고 복사하기에 바빴고, 주말에는 기차를 타고 평소 가고 싶었던 곳들을 방문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네카어강을 건너 베버 하우스에도 가보고, 라인강을 따라 내려가 아직 본에 있던 연방 의회를 찾기도 했다. 그러던 한 주말, 나는 남모르는 설렘 속에 유서 깊은 역사 도시 카를스루에를 찾았다. 헌법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제도는 상당 부분 독일 모델을 따르고 있다.

옛 통치자의 여름 궁정 한쪽에서 목적지를 찾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카를스루에의 특이한 방사형 도로 구조가 자꾸 방향을 헷갈리게 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물어 어렵사리 연방헌법재판소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 첫 느낌은 역사가 배인 주변 풍경에 비해 상당히 단출하고 현대적이라는 생각이었다. 두 개의 재판부를 따로 배치한 듯한 건물 구조와 바깥쪽으로 커다란 유리창이 많아 건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낯선 행색의 동양인 청년이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자 경비를 서던 젊은 군인 하나가 다가왔다. 누구냐고 묻길래 코리아에서 온 헌법학도라고 답한 뒤 뜬금없이 건물에 유리창이 왜 이렇게 많냐고 되물었더니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여러 가지를 말해 주었다. 요지는 시민들이 다 들여다볼 수 있어야 권력이 부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독일어에서 공공성은 공개성과 같은 말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짧은 탐방을 마치고 만하임에서 기차를 갈아타다가 나는 문득 질문에 부딪혔다. 왜 카를스루에였을까. 수도인 베를린이나 본이 아니고, 경제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나 함부르크도 아니고, 지역의 맹주인 뮌헨이나 슈투트가르트도 아니고, 왜 이곳이었을까. 연방헌법재판소를 유서 깊은 역사 도시 카를스루에에 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지역균형 발전이나 정치적 안배 필요성 등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독일도 남북과 동서 갈등이 정치성향이나 종교 배경과 관련하여 뿌리 깊은 까닭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유 말고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시민의 관점에서 해석하기에는 정치·경제·지역의 중심지들보다 평범한 주민의 일상을 보듬은 오붓한 역사 도시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나는 대한민국 헌법을 시민의 관점에서 해석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어디일지를 거듭 고민해 왔다. 그 결론을 몇 차례 공사석에서 발설하기도 했고, 한두 차례는 인쇄된 글로 언급한 기억도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공개적인 제안을 통해 이 문제를 한 번 공론에 부쳐보고 싶다. 헌법재판소를 경주로 옮기자!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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