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11001010003084

영남일보TV

[김준의 바다인문학] 백합, 그날 이후…조개들의 천국은 지옥이 되었다

2021-10-01

1
백합은 모래갯벌에서 서식한다. 백합은 파도나 홍수의 피해가 적고 조류가 잘 소통하면서 담수가 유입되는 곳이 좋다. 한강 하구 섬 주변, 금강과 동진강과 만경강 하구, 영광 백수 갯벌, 고창 곰소만 갯벌, 증도 갯벌 등에 많이 서식했다. 모두 지반이 평평하고 고운 모래가 많은 사질 갯벌이다. 갯벌 노출 시간은 5시간 이내가 적당하다. 당연히 먹이가 되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풍부한 곳에 많이 서식한다. 새만금에서 만난 폐사된 백합들.

지난해 이맘때다. 내소사가 있는 전북 부안에 있는 잘 알려진 식당을 찾았다. 백합요리를 시켜놓고 기다리니 백합회, 백합탕, 백합구이, 백합콩나물찜, 백합전 등이 푸짐하게 나오더니 백합죽으로 마무리한다. 그전에도 부안을 자주 방문했지만 한 발 더 깊게 발을 들여놓은 것이 그 무렵이다. 한참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물막이 공사를 끝낸 이후로도 10여 년 새만금을 오갔다. 다들 매머드 방조제를 싫어한 것 같다. 공사를 반대하는 삼보일배와 매향제 행사도 이어졌다. 때로는 주민들이 때로는 시민사회가 나서서 새만금사업 중단을 외쳤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주민과 단체도 있었다. 시시비비의 대상이던 새만금갯벌은 그렇게 무참히 사라졌다.

부안 계화도 갯벌
'조개 중에 으뜸' 백합 황금어장
새만금 방조제로 갯벌 사라지자
백합 죽어나가고 공동체 무너져

아직 남아있는 어장
물새들이 찾는 장봉도·볼음도…
한강 하구와 서천 갯벌서 서식
백발의 부부에겐 보험이자 효자


◆아! 새만금

사실 새만금 갯벌은 없었다. 계화도 갯벌, 심포 갯벌, 하제 갯벌 등만이 있었을 뿐이다. 새만금은 간척과 매립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책의 산물이었다. 그 갯벌이 어민들에게 가장 많이 내준 것 중 하나가 바로 백합이다.

백합은 모래갯벌에서 서식한다. 백합은 파도나 홍수의 피해가 적고 조류가 잘 소통하면서 담수가 유입되는 곳이 좋다. 한강 하구 섬 주변, 금강과 동진강과 만경강 하구, 영광 백수 갯벌, 고창 곰소만 갯벌, 증도 갯벌 등에 많이 서식했다. 모두 지반이 평평하고 고운 모래가 많은 사질 갯벌이다. 갯벌 노출 시간은 5시간 이내가 적당하다. 당연히 먹이가 되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풍부한 곳에 많이 서식한다.

5
백합은 조개 중 으뜸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백합은 백이면 백, 껍질의 색과 무늬가 달라 모든 조개 중 으뜸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상합'이라고도 한다. 껍질이 두껍고 단단하며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쉽게 상하지 않는다. 입만 벌리지 않는다면 상할 일이 없다며, 어민들은 무거운 돌을 백합이 담긴 자루에 얹어 놓기도 한다. 백합을 잡는 어구를 '그레·끄렝이·끌개'라 한다. 호미나 갈고리를 이용해서 잡기도 한다. 그레는 한쪽에 날을 세운 폭 2.5㎝에 길이 50㎝ 남짓 되는 쇠를 긴 줄에 묶어 허리에 걸고 뒷걸음질을 하면서 갯벌을 긁어 백합을 찾는다. 이 어구가 그레, 끄레, 끄렝이라 부르는 이유다.

◆갯벌은 처참히 죽어나가고

새만금은 부안에서 군산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대 하구 갯벌 지역이었다. 2009년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한 전문가들조차 감탄했다. 일본에서 온 갯벌 생물 연구자들은 우리 갯벌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호주와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철새를 모니터링 하는 외국 탐조인들은 도요물떼새가 머무는 철이면 꼭 새만금을 찾았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힘을 보탤테니 꼭 새만금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그 새만금에서 눈에 박히도록 이가 나도록 먹고 보았던 것이 백합이었다. 봄, 여름, 가을, 심지어 겨울까지 부안 계화도 어머니들은 그레를 들고 망태기를 등에 지고 갯밭으로 나갔다. 아홉 가지 어패류가 많다는 '구복작', 백합 씨알이 굵고 큰 '삼성풀', 마을에서 가장 멀리 있는 '만전연풀' 등 넓고 너른 갯벌이라 귀하고 소중함을 몰랐다. 화수분처럼 나가면 가득가득 백합을 캤던 황금어장이었다. 백합만 아니라 동죽, 소라(피뿔고둥), 개불, 맛, 바지락, 모시조개….

계화도 어머니들은 오직 백합만 캤다. 동죽이 올라오면 발로 갯벌에 묻었다. 방조제로 물길이 막히자 조개들의 천국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수천년 들물과 날물이 만든 갯벌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건 순간이었다. 조간대 상부는 육지로 변해갔다. 칠게는 구멍에 반쯤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까맣게 올라온 백합들이 입을 벌리며 죽어갔다. 맛조개도 흰 살을 내놓고 힘들어했다. 어민들은 물길을 따라 점점 깊은 곳으로 멀리 나가야 했다. 마지막 물막이공사가 끝난 얼마 후 많은 비가 내렸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대 백합 산지였던 부안·김제·군산권 갯벌은 처절하게 무너졌다.

계화도 어머니들은 백합밭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렸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당벌이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농사짓는 것보다 갯일이 더 익숙한 그들이었다. 화수분처럼 백합을 내주던 갯벌이 있어 논밭을 마련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더 이상 백합을 잡지 못하자 마을을 떠난 사람도 있었다. 백발의 어르신들은 힘을 잃고 허드렛일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푼돈처럼 매일매일 찾아 쓰던 갯벌이 사라지고 난 계화도 마을 풍경이다. 갯벌은 만년 직장이었다. 그레를 들만한 힘만 있으면 퇴직할 일이 없었다. 정년이 없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천국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예전처럼 오순도순 백합잡이를 하며 정을 나누던 마을공동체도 무너졌다. 다툼도 많아지고 삭막하게 변해갔다. 오직 백합이 사라졌을 뿐인데 그 충격은 너무도 컸다.

2
새만금사업 이전 부안 계화도 갯벌에서 백합을 채취하는 주민들.

◆이곳만은 지키자

최근에 백합을 다시 만났다. 북한 땅이 바라보이는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그리고 볼음도 모래 갯벌에서다. 모두 한강 하구에 있는 갯벌들이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새만금과 이웃하고 있는 서천 유부도 주민들도 백합을 채취해 먹고산다. 이 중 서천 갯벌은 이번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갯벌'에 포함된 곳이다. 볼음도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주문도 갯벌에서 그레로 주민들과 백합을 캘 때 자꾸 계화도 어머니들이 생각났다. 볼음도에서 백합을 잡고 나서 후리 그물로 숭어를 잡아서 배 위에 모여서 뒤풀이하는 모습을 보니 꼭 계화도 갯벌에서 본 그 모습이다.

한강 하구 갯벌은 희귀한 물새들이 많이 찾는 서식처이자 생물다양성이 뛰어난 갯벌이다. 장봉도에 딸린 동만도, 서만도, 아염, 사염…, 무인도로 검은머리물떼새나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의 서식지다. 일찍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최근 람사르습지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갯벌에서는 백합 외에도 동죽, 대합, 바지락이 서식하며 무산 김을 양식하고 있다.

새만금 갯벌이 무너진 후 장봉도, 볼음도, 주문도가 서해 갯벌에서 손꼽히는 백합서식지로 급부상했다. 잘 지켜야 한다. 나오는 길에 경운기를 태워준 노부부가 그랬다. 백합으로 용돈 벌이와 생활비가 충분하다고. 백합이 노부부에게는 '효자'다. 백합이 노부부에게는 '보험'이다. 어떤 사회보장제도가 노부부의 삶을 이렇게 오롯이 지켜줄 수 있겠는가. 있을 때 잘해야 한다. 후회하지 말고. 백합이 인간에게 하는 말이다.

4
서해안의 별미 백합죽과 백합탕. 죽 한그릇 먹는데 나온 반찬들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백합죽 한 그릇

'죽 한 그릇 먹는데 바지락국에 반찬 좀 봐유. 전라도 맞구먼'.

바다가 없는 곳에 사는 그는 부안 채석강 인근 한 식당에 차려져 나온 조찬용 백합죽과 찬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배추김치와 무김치는 기본이고 호박나물에 오징어젓갈, 멸치볶음, 우뭇가사리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입에 착 감기는 바지락국이라니 더는 할 말이 없다. 화려함보다 실효성과 실증성이 더해진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백합죽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한동안 수저를 들지 못했다. 이곳에서 백합을 만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부안이란 이름만 들어도 생각나는 조개였다. 가을 백합은 유독 굵었다. 눈을 감아도 그레를 들고 갯벌을 긁어 백합 캐는 어머니들의 얼굴이 수시로 떠올랐다. 언제나 부안 여행은 내변산과 외변산을 둘러보고 백합죽으로 마무리했다.

2021100101000000600030843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새만금의 백합은 만경강과 동진강이 키우고 변산이 길렀다. 강은 병들고 갯벌은 사라졌다. 백합도 새들도 사라졌다. 집집마다 몇 개씩 걸려 있는 그레는 녹이 슬었다. 어민들 생전에 다시 그레를 들고 갯벌로 나갈 수 있을까. 계화도 어머니가 끓여준 백합죽이 그립다.

조개탕이 그렇듯이 맛있는 백합탕을 끓이는 방법도 의외로 간단하다. 신선한 백합을 듬뿍 넣고 땡초를 약간 넣어 끓이면 된다. 신선한 백합을 찾는 묘수는 뭘까? 단연 '발품'이다. 장봉도는 '갯티길'이라는 걷는 길과 솔숲과 해수욕장이 좋다. 섬여행도 하고 백합탕과 백합칼국수도 맛보면서 직거래 할 주민을 찾으시길 권한다. 갯벌 체험을 한다며 갯벌을 파헤치는 일은 삼가면 좋겠다. 거기는 농촌의 논밭처럼 주민의 텃밭이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