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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사진가 류태열(2) 칼바람 맞으며 갓바위 77번째 오르던 날, 동이 트자 불국토가 펼쳐졌다

2021-11-12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사진가 류태열(2) 칼바람 맞으며 갓바위 77번째 오르던 날, 동이 트자 불국토가 펼쳐졌다
마애불 시리즈 중 경산 방향으로 찍은 갓바위의 색다른 모습. 〈류태열 제공〉


나의 목공 기술은 한 단계 더 고급스러운 직장으로 인도된다. 대구백화점 8층에 있었던 대백화랑이었다. 당시 상아·무지개 등 시내 곳곳에 미술용품 전문가게가 있었는데 대백화랑도 메이저급으로 대우받는다. 자연스럽게 지역에서 명성을 날리는 화가와 사진작가 등을 지켜볼 수 있었다. 거기서 고난도의 액자 만드는 기술을 전수한다. 1년 후 중구 화전동 자유극장 뒷골목에서 '태 갤러리'를 오픈한다. 그 갤러리는 화전동을 거쳐 2004년 약전골목 남쪽 초입으로 이전, 2020년까지 존속한다.

그 갤러리는 액자 업계에선 나름 실력을 인정받는다. 당시 서울에서조차 구할 수 없었던 사진 원판을 덜 산화시키는 중성지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했다. 전남 광주의 모 대학 강용석 교수(현재 백제예술대 사진학과)가 중성지 관련 정보를 알려준 덕분이다. 서울에 있던 구본창과 김아타, 그리고 훗날 내 사진의 사부가 된 이상일, 화가 이봉기, 조각가 이재홍 등이 단골이 된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사진가 류태열(2) 칼바람 맞으며 갓바위 77번째 오르던 날, 동이 트자 불국토가 펼쳐졌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불의 신령스러운 자태. 〈류태열 제공〉


사진과 조우한 목공기술자
목공실기교사 하다 사진에 눈 떠
액자 전문 갤러리 운영하며 출사
"사진은 무슨…" 작가들 냉소도


◆첫 화두는 장승

20여 년의 태 갤러리 시절, 사진가가 되는 데 필요한 기본기를 축적해나갔다. 1985년 생애 첫 카메라를 구한다. 삼성카메라였다. 다음은 니콘 F3, 다음은 핫셀, 다음은 독일제 612 파노라마 카메라인 닌호프(Linhof) 등을 소유하게 된다.

처음 관심을 둔 피사체는 '장승'이다. 한국의 얼굴, 난 그걸 장승에서 발견하고 싶었다. 평일에는 갤러리 업무에 집중했고 주말이 되면 장승 탐사에 나선다. 목장승은 충청도권, 돌 장승은 전라도권에 많이 집중돼 있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장승 소재지를 찾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다. 수소문의 나날이었다.

1990년대로 넘어가던 시절. 한국 장승은 사몰 위기에 내몰린다. 1970년대를 넘어오면서 새마을운동 등으로 인해 상당수가 없어진다. 제주도 돌 하르방, 전남 섬지방에 흩어져 있는 벅수 등 돌 장승류는 도난 품목 1호나 마찬가지였다. 장승은 마을 어귀 당산나무 근처에 많이 세워져 있었다. 잡신들이 발호하는 걸 막는 일종의 벽사 수호목(守護木)이었다. 한국의 혼, 그 한 줄기가 장승에 스며 들어가 있었다. 그게 사라지고 있었고 사진가는 의당 기록할 의무가 있었다.

지역 사진가들이 고운 시선으로 봐주지 않았다. '사진은 무슨…, 액자나 만들면 되지…'. 그런 냉소는 견디기 힘들었다. 전국 130여 개의 목·석장승 사진을 골라 2001~2002년 대구·부산·서울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내 사진의 사부인 이상일 사진가의 소개로 서울 인사동 HAUT 갤러리에서도 초대전을 할 수 있었다. 강상규, 김재수, 강위원 등 대구 사진계 리더들이 갤러리를 찾았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사진가 류태열(2) 칼바람 맞으며 갓바위 77번째 오르던 날, 동이 트자 불국토가 펼쳐졌다
초봄 흑매화와 오버랩된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 아미타불. 〈류태열 제공〉


장승 찾아 삼만리
사라지고 있는 '한국의 얼굴'
전국 장승 수소문 해가며 기록
130여점 대구·부산·서울서 전시
사진계 리더들도 내 작품 봐줘


◆마애불에 도전하다

장승이란 조그만 구멍 안으로 들어가 무릉도원 같은 불교미학을 만나게 된다. 성황당·상여집 등이 불교를 만나 산신각·칠성각 등으로 회통하게 된다.

내 사진 화두 2탄은 바로 마애불. 전국 마애불을 모두 찍어보고 싶었다. 일단 갓바위부터 탐험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갓바위 사진은 올려다 보면서 앙각으로 찍은 것들이 주종이었다. 위로 올라가 갓바위 시선으로 대구 권역을 담아보고 싶었다. 1년6개월 이상 선본사 측에 졸라대서 겨우 허락을 받아낸다. 얼추 갓바위를 위해 팔공산을 200번 이상 올라갔다. 77번 올라가던 날을 잊을 수 없다. 한겨울 산 위에서 노숙을 했다. 설한풍 사이로 희붐하게 동이 트고 있었다. 순간 내 눈 앞에 불국토가 깔린다. 멀리 경산권이 운무에 숨겨진 신비한 사진이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갓바위 특집전을 한다. 이후 경주 남산 신선암과 칠불암, 서산 마애불, 월악산, 경주 선도산 등 15년간 전국 120여 곳의 지방을 돌면서 184점의 마애불 사진을 낚을 수 있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때 공개했는데 반응이 좋아 미국 휴스톤에 있는 갤러리 포토페스트로부터 초대를 받는다.

2017년 마애불 도록이 나왔다. 이때 강우방 전 경주국립박물관장이 발문을 보내왔다. 그는 내 사진을 두고 '적정의 다큐멘터리'로 명명했다. '작가와 대상이 하나가 되어 있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사진가 구본창은 2007년 경주 선도산에서 찍은 마애불 사진을 구입해 갔다. 모두 사건에 가까운 감동이었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사진가 류태열(2) 칼바람 맞으며 갓바위 77번째 오르던 날, 동이 트자 불국토가 펼쳐졌다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심취의 대상은 장승이었다. 장승 앞에 선 젊은 날의 류태열. 〈류태열 제공〉


불교미학에 심취
갓바위 시작, 15년간 마애불 천착
사진비엔날레 호평 받고 美초대전
봉정사·화엄사…'절의 혼' 담기도
불상의 본질, 빛과 그림자로 구현
경주 토함산 석굴암 '인생의 과제'


◆절집을 찍자

불상 촬영이 늘어날수록 친해진 주지 스님도 늘어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동 봉정사도 2017년 사진집·개인전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행자가 된 양 요사채에서 1년간 머물 심산이었다. 얼추 200일 정도 절집에서 공양한 것 같다. 절은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다. 모양만 봐선 안 된다. 창건·중창 관련 구전설화, 유명한 승려들의 야사, 소유한 국보와 보물 등의 흐름등을 모두 꿰차고 있어야 한다.

절집 사진은 빛과의 싸움이다. 사계절의 빛이 어떤 각도와 세기로 어느 지점에 떨어지는지를 간파해야 된다. 그리고 눈, 비바람, 안개, 달빛 등이 어떻게 스며드는가도 주요 변수다. 불상의 본질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구현된다. 불상의 금빛은 너무 강한 자연광 앞에서는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조명을 쏘아 부딪혀 나오는 반사광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낮보다 한밤이 제격이었다. 달빛도 거추장스러웠다. 조심조심 노심초사 해가며 촬영하니 주위 스님들은 다들 "대충 찍어라"고 위로한다. 어렵사리 2018년 120쪽의 도록이 출간된다. 또 다른 봉정사의 역사랄까.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갓바위 촬영 때 집요한 내 근성을 옆에서 지켜본 분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역사책 같은 사진집을 만들지 마라"고 했다. 나만의 시각을 원했던 것이다.

나는 10개의 범주를 만들었다. 조화, 문, 의식주, 느낌, 도, 붓다, 고요, 공, 말사 등이었다. 촬영 주제는 '절의 혼(Soul of the temple)'이었다. 산의 라인, 절의 처마와 기와의 선, 그리고 꽃과 숲의 라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고들어 거기에 가장 맞는 각도를 찾아냈다. 고품격 미학을 찍기 위해 드론을 날렸다.

추운 겨울 오전 1시30분, 눈 맞은 각황전의 아득하고 적막한 아름다움 앞에서는 셔터가 쉬 눌러지지 않았다. 대웅전 앞 석등 꼭대기 보주에 걸린 절묘한 달무리 한 컷을 위해 1주일을 장고해야만 했다. 그리고 노트 한 권 크기의 파편으로 남은 '화엄석경'을 간신히 빌려 계곡에 집어넣었다. 물의 어른거림과 어울리는 석각된 한자 글씨체를 탐색했다. 너무 또렷한 것도 아니고 너무 흐릿한 것도 아닌 모습, 그러려면 알맞은 유속을 유지해야 된다. 이리저리 돌의 위치를 수십 번 바꾸고 수백 컷을 찍었다. 그렇게 고생한 화엄사 사진은 2019년 화엄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되고 도록도 출간된다.

◆남은 개인전, 그리고 나의 꿈

조계종 산하에 26개 교구 본사가 있다. 죽기 전에 그 사찰을 모두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불교예술의 정곡을 찌르고 싶다. 특히 팔공산에는 두 개(동화사·은해사) 본사가 있는데 은해사에 딸린 거조암에는 오백 나한상이 있다. 저작권은 절과 내가 동시에 공유하기로 하고 1년간 나한전에서 쪽잠을 자면서 촬영을 했지만 원하는 사진이 아니라서 다 버렸다. 빛과 각도의 문제였다. 나한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내 재촬영을 했다. 하지만 아직 나한전 개인전을 못 하고 있다. 제대로 보여주려면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구미술관 정도의 크기라야 하는데 아직 장소 섭외 문제로 고민 중이다.

동남아 불교국가의 영성을 얻기 위해 5년간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 6개국 불교미술을 촬영했지만 아직 개인전을 못하고 있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도 제대로 촬영하고 싶었는데 내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 짧아 부족한 사진만 찍고 말았다. 언젠가 류태열 버전의 석굴암을 찍고 싶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사진가 류태열(2) 칼바람 맞으며 갓바위 77번째 오르던 날, 동이 트자 불국토가 펼쳐졌다


■사진가 류태열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대구로 온 뒤 대구백화점 내 대백화랑을 거쳐 중구 화전동에서 액자 전문 갤러리 '태'를 운영하며 사진촬영을 병행했다. 1996년 첫 개인전을 연 그는 이후 한민족의 숨결이 담긴 장승 촬영을 시작으로 전국 각처의 마애불, 그리고 새로운 모습의 갓바위 시리즈를 건졌다. 2년 일정으로 안동 봉정사, 지리산 화엄사의 미학을 촬영했고, 안개와 바다 이미지를 주제로 한 5번의 존재 시리즈를 엮어냈다. 2011년에는 마애불을 주제로 미국 휴스톤 포토페스트갤러리 초대전도 가졌다. 마애불·화엄사 등 모두 6권의 도록 및 사진에세이집을 펴냈다. 코로나19 시즌에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소중한 인연 35명을 선정해 '내가 만난 사람들'이란 개인전, 청도군의 요청으로 '청도의 사계' 사진집도 펴낸다. 사진은 개인전 도록과 에세이집.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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