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전설의 시즌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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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에서 오리온스 김병철(왼쪽)이 삼성 썬더스 서장훈의 수비를 뚫고 공격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
프로농구 2021~2022 시즌을 앞두고 대구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농구팀이 창단됐다. 대구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농구단이다. 시즌 초반이지만 중위권을 유지하며 지역 농구팬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다. 지금은 기세가 많이 꺾였지만 프로농구는 우리나라 3대 프로 스포츠 중 하나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할 때 대구에는 연고팀이 있었다. 대구 오리온스(이하 오리온스)가 바로 그들이다. 오리온스는 14시즌을 대구와 함께했다. 그러다 돌연 연고지를 수도권으로 이전했다. 지역민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후 대구는 10년 동안 프로 농구단을 갖지 못했고 농구팬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와중에 대구한국가스공사가 팀 창단을 선언했고 지역팬들은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농구애정을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이즈음 대구 농구팬들과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오리온스가 불현듯 떠오른다. 10년 만에 오리온스를 소환했다.
역대급 2001~2002 시즌
178㎝ 단신 포인트가드 김승현
어시스트·스틸 1위로 시즌 석권
외국인 힉스, NBA급 실력 과시
김병철·전희철, 내외곽서 득점
前 시즌 꼴찌팀이 우승팀으로…
2007~2008 시즌부터 내리막길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후
감독 이적하고 에이스 부상·은퇴
2011년 고양시에서 새출발 발표
일방적 결별에 농구팬·市 반발
오리온제품 불매운동도 일어
오리온스는 1996년 11월 우여곡절 끝에 대구를 연고지로 정하고 프로농구단으로 정식 출범했다. 창단 첫해에 코리안리그 우승, 제77회 전국체전 준우승을 기록했다. 한국프로농구(KBL) 원년과 1997~1998 시즌에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그 중심엔 전희철·김병철이라는 토종 콤비가 있었다.
오리온스는 그러나 이들을 포함한 주축 선수들의 군 입대 후 긴 암흑기를 맞는다. 1998~1999 시즌 KBL 신기록인 12연패와 NBA 기록인 25연패를 넘어서 결국 32연패에 빠졌고 이 연패 행진은 1999년 2월28일 나산 플라망스전에서 겨우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은 경기에서도 전패를 당하며 3승42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9~2000 시즌에는 전희철이 복귀했지만 포인트가드 부재, 외국인 선수의 태업 등 악재가 겹치면서 20승25패로 8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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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전주 KCC의 경기에서 대구 김승현(오른쪽)이 전주 신명호의 수비를 뚫고 골밑을 파고 들고 있다. 〈영남일보 DB〉 |
2000~2001 시즌에는 김병철의 가세로 4강 전력으로 평가받았으나 9승36패로 다시 꼴찌를 기록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포인트가드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슈팅 가드인 김병철이 팀 사정상 시즌 내내 포인트 가드 역할을 했지만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또한 기대 이하였던 외국인 선수가 자주 교체되면서 조직력을 정비할 시간이 없었다.
오리온스는 2001~2002 시즌을 앞두고 가드 한 명을 지명한다. 동국대 출신의 김승현이다. 외국인 선수 1순위인 마르커스 힉스도 영입했다. 이는 오리온스 전성기의 서막을 알리는 조합이었다. 178㎝의 단신 김승현은 그해 프로농구 무대를 제압했다. 김승현은 12.2득점, 4.0리바운드, 8.0어시스트, 3.2스틸을 기록하면서 어시스트 1위, 스틸 1위를 차지했다. 시즌 MVP와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화려한 드리블과 패스, 엄청난 스피드로 몇 년간 이어졌던 오리온스의 포인트가드 부재를 한 번에 해소해 주었다. 마르커스 힉스는 NBA 수준의 골밑 돌파와 가공할 체공력에서 나오는 블록슛, 리바운드 실력으로 농구팬들에게는 한 단계 수준 높은 농구를 보여줬다. 24.2득점으로 4위, 8.2리바운드, 3.7어시스트, 2.9블록으로 1위를 기록하며 외국인 선수상을 차지했다.
팀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양철' 듀오의 변신도 시즌 내내 화제가 됐다. 김진 감독은 3점 슈터 김병철에게 수비를 강조했고 골밑보다는 외곽을 선호하던 전희철에게는 골밑 로테이션 수비의 중책을 맡겼다. 이들은 '수비만 하라'는 김진 감독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힉스의 공격패턴이 타팀에게 간파당하고 체력이 떨어진 3라운드가 되자 김진 감독은 '출격 명령'을 내렸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김병철과 전희철은 내외곽에서 득점했고 오리온스는 이들의 든든한 활약으로 시즌 1위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4강에서 5차전, 결승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2002년은 오리온스가 우승하고 나서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해이기도 하다.
오리온스의 전성기는 이어졌다. 2002~2003 시즌, 김승현과 마르커스 힉스의 콤비플레이가 더욱 무르익어가고 김병철이 내외곽에서 활약하면서 2년 연속 정규리그 1위 수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3위였던 원주 TG삼보 엑서스와 맞붙었던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악명 높은 '15초 실종사건'이 일어난다. 챔피언 결정전 1·2차전을 TG 삼보에 내주고 3·4차전을 승리한 뒤 맞이한 5차전에서 3차 연장까지 간 끝에 패배했다. 하지만 경기 후 이 경기를 분석하던 코칭 스태프는 4쿼터 종료 1분16초 전 허재의 아웃 오브 바운드로 TG 삼보가 공격을 재개해 잭슨의 3점슛이 들어가기까지 15초 동안 전광판 시계가 멈춰 있었던 사실을 발견했다. 오리온스는 재경기를 요청했고 제정위원회에서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6차전 당일 오후 열린 KBL 김영기 총재와 양팀 단장 간의 면담에서 오리온스는 재경기를 포기한다. 정태호 단장은 "프로농구 발전이라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제소를 취하한다"며 눈물을 쏟았다. 결국 숨막히던 승부는 6차전에서 TG 삼보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오리온스는 2003~2004시즌을 32승 22패, 3위를 기록했다. 이후 2004~2005, 2005~2006, 2006~2007 시즌에서도 김진 감독, 김승현-김병철 체제는 더욱 공고해지면서 꾸준히 힘을 발휘해 서울 삼성 썬더스가 9시즌 연속 진출하기 전까지 KBL 최다인 6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속공을 내세우는 빠른 플레이, 3점슛, 덩크슛으로 대변되는 화려한 농구는 오리온스의 특징으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이는 KBL 12시즌 통산 득점 1위(50323점), 3점슛 1위(4686개)라는 기록이 말해준다. 오리온스 자체로 한국 프로농구의 흥행코드로 자리잡았고 포인트가드 김승현, 프로 원년부터 팀을 한 번도 옮기지 않은 프랜차이즈 스타 김병철도 그 한 축을 담당했다.
2007~2008 시즌을 앞두고 팀의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던 김진 감독이 서울 SK 나이츠로 떠나면서 다시 오리온스는 변화를 겪는다. 한국 농구계의 슈퍼 스타였던 이충희 감독을 영입하며 계속된 전성기를 노렸다. 그러나 김승현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김승현은 2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충희 감독도 시즌 초 사임하여 김상식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친 오리온스는 결국 12승42패로 7년 만에 최하위의 수모를 겪게 된다. 2008~2009시즌에도 김승현의 시즌 아웃과 외국인 선수들과의 부조화로 오리온스의 몰락은 이어졌다. 시즌이 끝난 후 김승현이 이면계약으로 18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2010~2011 시즌에도 부진이 이어지면서 다시 10위를 기록했다. 이 시즌을 끝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김병철이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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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커스 힉스 〈영남일보 DB〉 |
2011년 6월14일 오리온스는 고양시와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연고지 이전을 공식 발표했다. 오리온스에서 내세운 연고지 이전 이유는 두 가지였다. 고양시의 적극적인 구애와 함께 최근 성적 부진을 벗어나 제2의 창단이라는 기분으로 새 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본사(서울)-체육관(대구)'을 오가는 이중살림이 힘겨웠던 상황에서 별도로 빌려쓰는 대구의 연습장조차 건물주의 요청에 의해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고양시로의 이전을 결정했다. 당시 KBL은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않은 오리온스에게 연고지 이전 요청을 승인해 줘 농구 관계자와 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오리온스의 일방적인 결별 선언에 대구시와 지역 농구팬들은 크게 반발했다. 대구시는 "그동안 연고지 이전 문제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라는 입장을 고수해 오다가 전격적으로 고양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지역 농구팬을 기만한 것"이라면서 "대구체육관을 개·보수하고 사용료까지 깎아줬는데 성원을 저버린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팬들은 KBL 게시판을 통해 "성적이 안 나온 것이 열심히 응원해준 대구 시민 탓이냐. 오리온스를 퇴출시켜라"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구단 홈페이지 역시 팬들의 비난으로 가득했다. 오리온제품 불매운동도 일어났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참고=KBL홈페이지·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농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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