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불모지 구미서 김선굉·장옥관 주도 '수요문학교실' 탄생
1980년대 공단 중심 다양한 문학단체 활성화…시민문학으로 성장
30여년째 지역 문화갈증 해소 역할 불구 경제불황 맞닥뜨려 운영난
문화예술인 창작공간 마련 등 구미시민문화 다시 꽃 피울 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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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결성된 구미 '수요문학교실'은 구미문예공모전으로 대변되는 '공단문학'을 구미시민의 문학으로 승화 시켰다. 〈박상봉 시인 제공·영남일보 DB〉 |
1969년 공업단지 조성으로 산업화가 시작된 경북 구미는 대한민국 공업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화적 전통이 강한 경주·포항·안동과 달리 1980년대 중반까지 문화예술 분야에선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구미 문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저음(低音·1983년), 시터(1985년), 샘문학회(1985년), 근원어(1987년), 공간(1988년) 등이 동인 활동을 시작했으나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1985년 구미수출산업공단(현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북지역본부)이 구미공단 근로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근로문예상 현상 공모전'을 구미 문학의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른바 '공단문학'이 탄생한 것이다. 근로문예상은 시민과 근로자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구미근로문학상'과 '구미문예공모전' 등으로 명칭을 바꿔 가며 38년이라는 긴 세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구미 문학이란 텃밭에 씨를 뿌리고 열매 수확에 주춧돌이 된 구미문예공모전(영남일보·한국예총 구미지회·한국산업단지공단 경북지역본부 공동 주최, 구미시 후원)은 매년 10월에 열리고 있다. 공단문학은 1988년 개설된 '수요문학교실'을 만나면서 구미문학의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 현재 구미산업단지 안팎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학활동은 단순한 산업활동의 부산물 또는 첨가물이 아닌 독립된 문학으로서의 견고한 틀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사실상 구미문학의 성장을 이끈 수요문학교실이 자리하고 있다.
◆'구미문학 모태' 수요문학교실과 문인협회
1980년대 후반 장옥관 시인(前 계명대 교수)은 구미수출산업공단 홍보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금오공고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김선굉 시인은 근로청소년회관 취미교실에 문학강좌를 개설해 근로자의 시심을 북돋우고 있었다. 두 시인은 구미 문학의 토양을 튼실하게 다진다는 생각에 의기투합했다. 근로문예상 수상자, 지역 문인 등과 함께 1988년 11월16일 수요문학교실을 결성한 것이다. 이날 두 시인은 원평동 전통찻집 '연다원'에서 김용락 시인을 초청해 '한국 민중시의 현황'이란 주제로 문학강좌를 열었다. 수요문학교실에는 두 시인 외에 박상봉·류경무 시인과 고(故) 김양헌 평론가 등 다수의 문인이 참여해 튼실한 버팀목이 됐다.
수요문학교실은 개설과 동시에 문인 초청행사, 문학동인 세미나, 강변 시인학교 운영 등으로 구미지역 문학 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양헌 평론가가 주도한 문학동인 세미나에는 구미산문문학, 길문학회, 글탁, 사각기둥, 우기, 계수나무, 시사랑 등이 한자리에 모여 주제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다. 문학 기행과 수요문학집 발간은 수요문학교실이 자랑하는 큰 업적으로 꼽힌다. 문학강좌는 현재까지 100회를 넘겼다. 수요문학교실을 다녀간 유명 문인으로는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을 비롯해 김수복·이상호·박상천·송재학·박남철 작가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1989년 10월에는 한국문인협회 구미지부가 결성됐다. 경북교원연수원장으로 재직하던 수필가 김규련, 선산군수와 구미시장을 지낸 수필가 서상은 등이 뜻을 모아 한국문인협회 인준을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요문학교실에 비해 주체적 역량을 결집한 대표 문학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요문학교실에 단비 뿌린 문인들
수요문학교실은 문학인의 사랑방이자 문학 중심 학교와도 같았다. 초기 운영에 적극 참여한 대표적 문인은 김선굉·장옥관·김양헌 외 수필가 김규련·서상은, 소설가 최해걸·송은숙·민혜숙 등이 있다. 2008년 7월 작고한 김양헌은 매주 1회 수요문학교실의 아지트였던 연다원에서 토론과 문학 지도를 담당했다. 탁월했던 그의 평론은 문학동인 세미나 기획과 연결돼 구미는 물론 김천·포항·대구 등 다른 지역의 문학동인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구미에서 소그룹으로 활동하던 구미산문문학회·길문학회·글탁·사각기둥·속칭·우기·계수나무·시사랑과 김천의 은유 동인도 토론에 참여했다. 류경무·박상봉 등 중견 시인은 구미 원평동 경북도립도서관에서 시 창작 지도를 주도했다. 장옥관·이규리 시인 등은 구미대에 개설된 시창작교실에서 문학운동 확대와 체계적인 문학 지도를 이어갔다.
시민은 여름이면 시원한 강가나 숲속에서 1박2일 일정의 '강변시인학교' 에 앞다퉈 참여했다. 봄·가을에는 이육사·정지용 등 유명 문학인 유적지를 순례하는 '문학기행'으로 문학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소규모 책자 형태의 '수요문학 문집’도 의욕적으로 엮었다.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과 만나는 시낭송회' '시 노래 음악회' 등 독특한 형태의 문학 행사를 열고 있다.
◆문학단체와 대기업 중심의 문화행사
동호인 수준에서 벗어나 두각을 드러낸 대표적인 문학단체로는 옛 선산의 지명을 딴 '선주(善州)문학동호인회'가 있다. 1984년 1월10일 발족한 선주문학동호인회는 이후 선주문학회로 명칭이 바뀐다. 1985년 3월 창간호 '선주문학'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41집을 펴내 가장 오랜 기간 구미문학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여영택(시)·최춘해(아동문학)·윤종철(시)·조명래(수필)·장재성(시)·견일영(수필) 작가는 선주문학회와 구미문학 발전을 주도했다. 지역신문 여성 백일장 수상자로 이뤄진 길문학회(1988년)와 구미공단 근로자 중심의 문학동인 초록빛(1988년) △뿌리(1989년) △동그라미(1990년) △둥지문학회(1990년) △구미산문문학회(1990년) △한국문인협회 구미지부(1990년)등 다양한 문학동호회의 작품집 발간도 문단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구미공단 문화활동은 1990년대 들어 최고조에 이른다. LG·삼성 등 대기업 중심으로 풍성한 문화행사가 곳곳에서 열렸다. 문집 전시, 시화전, 꽃꽂이, 공예, 수예 등의 전시회와 기업체 종합예술제가 줄을 이었다. 음악·연극·수석·서화·사진 등 동호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열린 연주회와 연극 등은 구미공단 근로자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근로의욕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등 국내 유명 연주단체의 공연도 수시로 열렸다.
◆구미산단과 문화예술 간 상관 관계
그동안 구미문학은 42만 구미시민의 내면적 성숙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문인들이 생각하는 '지역 문학이 나아갈 순방향'은 시민과 호흡을 함께하는 문학 활동이다. 구미 문학의 나아갈 방향은 물론 문화예술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한 번쯤 되돌아볼 때가 됐다. 아울러 문화 재원 부족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턱없이 부족한 문화예술지원기금은 문화예술인에게 창작공간 마련은커녕 기존 창작공간 운영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부터 구미산단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구미산단의 경기활성화는 문화예술 활성화와 호흡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2014년 325억달러로 정점에 올랐던 구미산단의 수출액은 한동안 250억~270억 달러에 머물다 지난해 300억 달러로 다시 급등했다. 또 LG BCM, SK실트론, 코오롱 인더스트리, KEC 등 대기업이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파급효과로 구미 경제에 르네상스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점점 커가고 있다. 경제활성화가 문화활성화로 이어지게 하고 쇠퇴기에 접어든 구미 문화예술을 다시 꽃피우기 위해서는 문화발전을 이끌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백종현기자 baekjh@yeongnam.com
자문=박상봉 시인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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