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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자유를 사랑한 첼리스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2022-03-18

독재와 횡포 묵인…무대를 떠나는 예술가

로스트로포비치
베를린 장벽 앞에서 연주하는 로스트로포비치.

1989년 11월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그 우방국들이 이념으로 갈라져 있던 20세기 냉전시대의 상징이던 그 장벽이 무너지면서 이제 냉전은 종말을 맞는 것 같았다. 당시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축하했다. 그날 평화의 상징이 된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이 연주되었다. 


연주자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소비에트 연방에서 망명한 연주자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첼리스트· 지휘자로 1927년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첼리스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러시아인이지만 그의 출생지는 이슬람 문화권인 바쿠(현재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다. 로스트로포비치 가족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 아버지에게 첼로를 배운 그는 1943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해 첼로, 피아노, 작곡, 지휘를 공부했다. 특히 그의 작곡 스승은 쇼스타코비치였는데 이 관계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1934)을 발표해 성공을 거둔 작곡가였다. 소비에트 시민들과 서구 각국에서 호평을 받았던 이 오페라는 1936년 완전히 다른 운명에 처하게 된다. 스탈린이 이 작품을 두고 '음악이 아닌 혼돈'이라 비판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당 기관지인 '프라브다'는 스탈린의 말은 인용해 비난의 기사를 실었고, 그때부터 쇼스타코비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거리가 먼 '형식주의자'로 낙인이 찍혔다. 

이런 비슷한 사건이 1948년 또 한 번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비판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교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부당한 결정에 항의하며 모스크바 음악원에 자퇴서를 냈다.

또한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의 필사본을 서방으로 빼돌리기도 했다. 이는 소련 당국이 '바비야르 학살'(1941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브 외곽의 산골짜기 바비야르에서 3만여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사건)을 묵인한 사실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로스트로포비치였지만 그는 소비에트 음악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받은 뛰어난 연주자였고 1950년에는 스탈린상을 받았으며, 1963년부터는 세계적으로 소련의 위상을 높이는 음악가로 성장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고 소련 체제에서 최고의 명예를 누리며 평탄하게 살았다. 그러나 1968년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다.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을 도와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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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솔제니친에 대한 현대의 평가는 다양하다. 목숨을 걸고 체제와 싸웠던 지식인이라는 평가부터 극단적인 슬라브 민족주의자로 푸틴의 지금과 같은 광적인 행보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비판까지 여러가지다. 


어쨌든 로스트로포비치가 만났던 당시의 솔제니친은 소련의 인권탄압을 고발한 '수용소 군도'를 집필한 후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솔제니친에게 수년간 은신처를 제공했다. 

또 솔제니친을 옹호하는 편지를 써 당시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당국은 결국 로스트로포비치와 그의 아내이자 볼쇼이 극장의 소프라노인 갈리나 비슈네프스카야에게 연주 금지령을 내리고 날마다 그들을 감시했다. 결국 로스트로포비치와 그의 아내는 1974년 미국으로 망명했고, 몇년 후 그들의 소련 시민권은 박탈당했다. '반애국적 활동으로 국가의 위신을 손상시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서방에서 활동하던 로스트로포비치는 1980년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의 석방을 요구하는 항의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1991년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혼란한 틈을 타서 러시아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하려 할 때 그것을 저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첼리스트이자 지휘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그는 2007년 8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고 전 세계는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2022년 2월24일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 세계는 분노하고 함께 연대하며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도 허용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연대의 하나로 음악계는 푸틴을 지지했던 러시아 음악가들을 무대에서 퇴출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음악가이지 정치가는 아니라고 항변하겠지만, 지난 20여 년간 이어온 푸틴의 독재와 횡포를 묵인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 가운데 로스트로포비치의 행보는 많은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수호하는 예술가의 실천, 그 자체로 '인간답게 사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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