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의병의 날 기념 행사
10~15일 전시·체험 부스 운영
학예사와 함께하는 '의병史'展
시민과 함께하는 '의병단' 조직
문화예술단체와 공연 등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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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식 영천시 문화예술과장이 창의정용군을 이끈 권응수 장군 공덕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올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30년 되는 해다. 임진왜란은 영천 의병 활동과 뗄 수 없는 관계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여는 날이 바로 6월1일 의병의 날이다. 이날은 1952년 음력 4월22일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이다.
이를 기념한 '대한민국 의병의 날' 기념행사가 오는 6월15일 영천시 조양공원 일대 강변공원에서 개최된다. 올해 행사를 주관하는 영천시는 6월10~15일 다양한 전시 및 체험 부스를 운영해 시민들에게 구국을 위해 몸을 던진 의병 이야기를 널리 알릴 계획이다. 특히 학생에게 영천 의병의 역사적 의미를 쉽게 전할 수 있도록 학예사와 함께하는 의병사(史) 전시회도 구상 중이다.
아울러 시민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위해 '시민 의병단' '어린이 의병단'을 조직하거나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함께하는 공연 등도 기획하고 있다.
앞서 영천시는 지난 3월부터 의병의 날 기념행사 개최를 알리고 행사 관련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시민참여 댓글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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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역사박물관장인 지봉스님이 고문헌을 근거로 영천성수복전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천역사박물관 제공> |
◆영천성수복전투의 역사적 의의
영천성수복전투는 임진왜란의 수많은 전투 중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육지전에서 최초로 영천성을 일본군에게서 다시 빼앗은 첫 승리이며, 최초의 대규모 육지전 승리다. 일본과 중국에 영천이라는 지명을 알리게 한 전투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권응수 장군이 있다. 임진왜란 때 영천·경주성을 탈환하는 등 곳곳의 전투에서 승전보를 전했다. 이에 공보판서겸 오위도총관을 역임하며 선무공신으로 화산군에 책봉됐다. 하지만 그의 공덕비는 일제강점기 때 훼손, 방치되다가 1947년 이후 영천경찰서로 이전, 보관되고 있다.
의병의 날 행사 유치로 지역 의병사와 영천성수복전투가 재조명되는 가운데 영천역사박물관은 영천성 수복 당시 전투 인원, 일일 배급량, 의병 업무 분담 등을 담은 중요한 자료들을 찾아냈다.
영천 의병사를 연구해온 영천역사박물관은 "당시 전투에서 군수물자를 담당했던 군위 부계 출신인 혼암 홍경승(洪慶承)의 '혼암선생실기' '분의록'에 정확한 수가 기록돼 있다"라고 주장했다.
1592년 7월25일 기록에 따르면 영천성 전투에서 식량을 담당했던 홍경승은 '의병은 총 3천970명'이라고 적시했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영천성수복전투에 참여한 인원이 3천560~4천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3천560명은 전투 이틀 전 7월23일 인원이었다.
◆의병 하루 배급량은
영천성 수복 전투에서 상장(대장) 직책을 맡은 권응수 장군은 의병들의 군량미까지 세심히 챙기는 등 조직적으로 군대를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권응수 의병진의 막하에서 8년 동안 종군하며 주로 군량을 담당하는 양료관(糧料官)을 지내면서 종군 기록을 남긴 홍경승의 '분의록'에는 참전기록과 더불어 식량 배급량에 대해 상세히 나와 있다.
'분의록'에는 7월23일부터의 배급량이 적혀 있다.
하루 배급량의 경우 상장군(上將軍, 정3품 이상)은 쌀 2말과 고기 3근, 전봉별장(前鋒別將, 선봉장)은 쌀 2말에 고기 4근으로 나타났다. 기타 여러 지역의 의병장(장수)에게는 쌀 8되와 고기 2근, 장정인 일반 의병에게는 쌀 6되와 고기 2근을 주었다. 노약자에게도 쌀 3되와 고기 2근을 주었는데 전투병의 뒤에서 여러 가지 잡일을 하는 사람에게 준 것으로 추측된다.
제승방략체제(각 지역의 군사를 한곳에 집결시켜 한 사람의 지휘하에 두게 한 방위체제)에서 일일 배급량이 2~3되인 것을 보았을 때, 영천성 수복전투에서 일반 장정의 쌀 배급량은 지나칠 정도로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영천역사박물관장인 지봉스님은 "전투에서 가장 앞에 서서 죽음을 불사하는 선봉장인 경우, 상장군보다 더 많이 배급한 것으로 보아 위험 수당까지 지급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러한 배급을 통해 군사들에게 배부르게 먹고 싸울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중요한 생산 구성원 1명이 빠져나간 가정에 많은 양의 쌀과 고기를 지급함으로써 가정으로 전해줄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가족을 걱정하지 않고 전투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체계적 부대조직의 창의정용군
영천성 수복전투의 시작점은 23일 저녁 무렵 3천500여명의 병력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창의정용군이라는 부대명과 3개의 조직으로 편성된 의병들은 각자 직책을 맡았다.
분의록에 의하면 7월23일 3천560명의 식사를 준비하는데 배정한 의병의 수는 물 긷는 사람 69명, 땔감을 구하는 사람 42명, 밥하는 사람 33명이다. 이 인원을 3부대로 나눴다.
3천560명의 창의정용군을 좌총 신해, 중총 정대임, 우총 최문병 3부대로 나누었다면 한 부대를 1천200명으로 볼 때 한 부대마다 물 긷는 사람은 23명, 땔감을 구하는 사람이 14명, 밥하는 사람이 11명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을 볼 때 영천성수복전투에 참가한 창의정용군은 치밀한 계획을 통해 만든 체계적인 부대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시용기자 ysy@yeongnam.com
유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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