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20513010001050

영남일보TV

[첫/날] 시인 김대호

2022-05-13

김대호
김천에서 '시남'이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대호 시인.

"늦은 나이에 등단 후
8년여 만에 낸 첫 시집
비로소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기분
첫 시집에 생활을 담았듯
생활을 떠나 무엇을 쓰겠는가"


나는 김천시 인근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고 군대 시절을 제외하면 거의 이 작은 소도시에서 살았다. 어릴 때는 만화광이었고 특히 그때의 인기 만화 '바벨 2세'는 너덜너덜하게 읽었다. 악몽같이 찾아온 사춘기 때는 용수철같이 이탈하려는 자기를 잡아 두기 위해 무작정 소설을 읽었다. 동네 누님들의 혼수물품이었던 각종 전집류를 독파했다. 특히 삼성출판사에서 간행한 한국현대작가들의 소설 중 박범신의 에로틱한 글을 읽으며 수음을 배웠다.

사춘기가 지나자 모든 세상일이 하향 평준화 되었다. 무엇을 해도 시들했고 빨리 늙고 싶은 게 유일한 소망이 되었다. 그 시절 그래도 나를 조금 의미있게 한 것이 소설쓰기와 독서였으리라. 그러나 이것마저도 군대를 제대하면서 시 쓰기로 종목이 바뀌었다. 작은 소도시에서 소설을 쓰며 가끔 만나 술추렴할 수 있는 업자가 한 명도 없었으므로 그것이 가능한 시 동인회에 들어가면서였다.

소설과 시는 같은 문학 장르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서울과 평양같이 지척에 있어도 서로 왕래할 수 없는 거리를 가진다. 무엇보다 멀티가 안되는 이유로 시 쓰기에만 줄곧 매달렸다. 우선 넘어야 할 산이 보였다. 김수영과 이성복과 황지우 시인 등이었다. 그들은 현대시의 판을 쥐고 있었고 그들을 넘어서야지 내 글이 생겨난다고 믿었다. 그들을 뛰어넘다니! 그것은 비현실적인 치기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치기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듯 하다. 나는 그들을 뛰어넘겠다는 치기 대신 아주 실용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냄새와 조도와 헛기침을 내 문장에 슬핏 끼워넣었다.

2022051301000265900010502
그가 8년 만에 펴낸 첫 시집 표지.

지금은 추풍령 발치에서 '시남(詩男)'이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너무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8년여 만에 첫 시집(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을 출산했다. 비로소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기분이었다. 모든 처음은 신선하고 말랑해야 할 터이지만 늦은 중년이 생산해 낸 첫 시집은 너무 어둡고 딱딱했다. 어두운 것은 개성적인 조도라 치고 딱딱한 것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다. 첫 시집에 생활을 담았듯 시집 출간 이후의 내 시 역시 거의 생활편이다. 생활을 떠나 무엇을 쓰겠는가 .

지루하고 비겁한 일들로 이어지는 생활이지만 그것을 피해가고 싶지 않았다. 표현만 신선하면 골백번 생활을 쓴다 할지라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시는 표현이다. 의미는 표현 속에서 태어난다. 의미가 시의 전반을 장악했을 때 그것은 대부분 시가 아니라 구호가 된다.

첫 시집을 내고 몇 편이 호의적인 반응을 받았다. 그중 '글짜들'이란 시편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글짜들의 무덤을 읽기 위해 책을 펼친다/ 흰 배경에 빼곡히 들어찬 검은 글짜들의 공동묘지가 한 필지마다 있다/ 이런 필지가 대략 삼백 장쯤 되는 책을 들추는 일은/ 죽은 것에 염을 하는 절차이다'

나는 오늘도 글짜들에게 염(殮)을 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 염을 하기도 한다. 미래는 앞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겹쳐 지나갔을 수도 있다. 내가 그것을 모른 채 살고 있을 뿐이다. 속으면서 혹은 일부러 속아주면서 살고 있다.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