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영 경북본사 총괄국장 |
말이란 게 그렇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의 입장에 따라 천양지차가 난다. 누군가에겐 사랑이고, 격려이고, 위로일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일 경우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증오와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씻기 힘든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일수록 장삼이사들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삶은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에는 말무덤(言塚)이라는 곳이 있다. 400~500년 전쯤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는 말무덤의 유래가 상당한 울림을 준다. 먼 옛날 각성바지들이 모여 살던 마을에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문중 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앞날이 걱정되던 마을 어른들이 원인과 처방을 찾던 중 과객이 일러준 예방책대로 말무덤을 만들었더니 이후부터 마을이 평온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내용이다.
'내로남불'과 그에 따른 역겨운 변명이 판을 치는 21세기 대한민국 정치권과 상당수 기득권층은 스터디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모든 것이 경쟁인 사회에서 우리는 언젠가부터 덩달아 치열해지고 있다. 양보와 배려는 점점 안드로메다로 가고, 그 자리엔 선택적 정의와 지극히 이기적인 자기합리화가 영역을 넓혀간다. 편 가르기와 갈라치기가 일상이 되면서 이제는 남녀노소, 동서남북이 갈등과 긴장, 저주와 혐오의 연속이다.
지칠 법도 한데, 불행하게도 절대 그렇지 않다. 에너지나 파워가 거의 타노스급이다. 선거 전과 후의 주제와 대상만 다를 뿐, 쥐어뜯고 싸우는 꼴사나운 모습은 여전하다. 승리를 거둔 여당이나 참패한 야당이나 저울에 달면 1g도 차이나지 않을 듯 경쟁적이다. 공식적으로 여야가 싸우는 와중에, 비공식적으로는 당내 권력을 향한 내전까지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국민이 없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못해 참담한 지경이다.
정치인들 대부분은 시쳇말로 좋은 학교를 나왔고, 꽤 괜찮은 스펙을 갖고 있는 편이다. 각각을 보면 구슬도 많은데, 막상 꿰어놓으니 보배는 절대 아닌 것 같다. 법조인 출신이라고 전부 정의롭고 공정한 것은 아니었으며, 자칭 전문가라는 이들도 '여의도밥'만 먹으면 해당 분야에서 좀처럼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다. 추진력과 성과, 그리고 열정만 놓고 보면, 나랏일을 하시는 분들보다 오히려 시·도지사나 시장·군수가 일을 더 잘한다는 생각도 든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잘도 찾아내면서 자기 눈에 박혀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외면하는 건지 진짜 묻고 싶다. 기름값을 필두로, 국민들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때문에 먹구름을 잔뜩 이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무슨 동호인클럽도 아니고 혈세 받아 뭣 하는 행태인지 부아가 치민다.
말 좀 가려서 하자. 세상사 거의 모든 다툼은 말에서 비롯된다. 존중하지 않으면서 대접을 바라는 양아치 같은 근성은 버리자. 손을 흔들어준다고 전부 반가운 것은 아니다. 엄지척과 곧게 뻗은 중지를 습관처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엄연한 그 차이를 붕어·개구리·가재는 아주 잘 안다. 쓸데없는 말은 정말 쓸데없다. 입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먼저 자기검열 한 번 해보자. 더 이상 정나미가 떨어지기 전에 여의도에 말무덤 하나 놔드려야 하나.장준영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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