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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문학]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

2022-06-23

박지원의 연행록 '열하일기'
여행여정 독립된 글로 서술
조선현실에 날카로운 진단
개방적 사고 의한 경험 강조
개혁 통해 시야의 확장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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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1780년(정조 4)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건륭황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진하사(進賀使)의 일원으로 꿈에 그리던 중국 여행을 떠나게 된다.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북경, 그리고 황제의 피서지인 열하(熱河)까지, 연암은 기나긴 여정의 특별한 경험들을 '열하일기(熱河日記)'라는 명저로 남겼다. 열하일기는 여타의 연행록(燕行錄)들과는 달리, 연행(燕行) 체험을 날짜별로 기록하면서 여정에서 만난 주요 인물이나, 사건, 명승고적들을 한편의 독립된 글로 서술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열하일기의 구성을 살펴보면, '도강록(渡江錄)'으로부터 '금료소초(金蓼小抄)'까지 모두 25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일신수필(馹신隨筆)'은 7월15일부터 23일까지의 기록으로 신광녕에서부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산해관까지, 562리의 여정과 관련된 부분이다. 또한 이 글에는 당시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면서도 청나라에 비해 낙후되어 있던 조선의 현실에 대한 연암의 날카로운 진단과 개혁 방안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신수필의 서문을 살펴보면, 연암은 먼저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고, 남의 말에만 의존하는 이들과는 학문을 논할 수 없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천하의 장관을 인식한 대표적인 사례로 공자가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던 고사와 부처의 시방세계(十方世界),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서양인을 함께 언급함으로써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를 지향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처럼 연암은 자신을 둘러싼 좁은 세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방적 사고에 의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연암의 주장은 당시 청나라를 오랑캐로만 여기면서 고루한 명분에만 사로잡혀 있던 조선 선비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일신수필 7월15일 기사에서 연암은 조선의 선비를 일등 선비(上士), 중간 선비(中士), 삼류 선비(下士)로 나누고, 이를 통해 당대 지식인층이 가진 허위 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가 제시한 일등 선비는 소중화 의식에만 사로잡혀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친명반청(親明反淸)이라는 허울뿐인 명분만을 고집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중간 선비는 나라의 부강과 백성들의 삶을 위해서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는 일등 선비보다 나아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반청이라는 명분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연암은 공허한 명분보다는 백성들의 이용(利用)과 후생(厚生)을 위해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선비들을 삼류 선비라 칭한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받는 기와 조각이 건축 재료로 활용되고, 더러운 똥덩어리가 유용한 거름으로 쓰이는 청나라의 모습을 제시하면서 조선 또한 이를 본받아야 함을 주장한다.

이처럼 연암이 평생 추구하고자 했던 실학사상은 선진적인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부국책(富國策)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암은 자신을 둘러싼 좁은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개방적 사고를 통해 더 넓은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암의 사유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생각이다. 여름의 시작을 연암의 열하일기와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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