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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스트라디바리'로 불리며 세계적 명성을 떨친 고(故) 진창현 선생의 일대기는 뭇사람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할 만큼의 드라마틱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가난에 쫓겨 열네 살 나던 해(1943년)에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에서의 모진 풍상을 극복하며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가 됐다.
선생의 유족들은 2016년 8월, 영남일보의 일본 현지 취재(대구·경북 디아스포라-눈물을 희망으로) 당시 김천시에 고인의 유품 기증 의사를 밝힌 데 이어 같은 해 12월 김천시청에서 '유품 기증 협약식'을 가졌다. 이때 선생의 부인과 장남은 "기증품은 평소 고인이 유달리 아끼고 좋아했던 것들"이라며 "김천이 음악의 도시, 한국 클래식 음악의 발상지가 되어 해외의 많은 음악인이 찾아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선생의 이야기와 유품을 문화 상품화하는 등의 역량을 과시하는 일은 김천시의 몫이 된 것이다.
시에 양도된 기증품은 1958년과 1960년대에 제작된 바이올린 각각 1대, 미완성 바이올린 2대, 바이올린 제작 도구 등 827점과 애장품 134점 등이며, 선생이 별세한 해(2012년)에 만든 바이올린(1대)은 '감문국 역사문화전시관(감문국 이야기나라)'이 준공될 즈음에 양도하기로 했다. 선생의 유품은 올 10월 개장될 역사문화전시관에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까지의 유물과 함께 전시돼 일반에 공개된다.
문제는 전시장소의 적절성 여부다. 전시장이 소재한 감문면이 선생의 출생지이긴 하지만 선사시대 부족국 감문국을 테마로 조성한 시설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관람객을 유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지역 문화계 관계자는 "선생의 유품과 고대 유물 사이의 동질성이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유품에 비해 전시공간도 제한적이라서 스토리 전개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선생의 일대기를 스토리텔링, 연극, 뮤지컬 등으로 가공해 지명도를 높이는 한편 문화계, 학계 등과 연계해 전시·공연 공간 확보에 나서는 등의 선행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품 전시장소로는 지역 주민이나 외지인 발길이 잦은 직지사 부근과 김천문화예술회관 근처가 적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천은 중소도시로서는 드물게 교향악단 등 음악 관련 5개 시립예술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진 고 진창현 선생의 이야기는 김천의 문화적 생산성을 한층 더 높여줄 자산이다. 적극적인 활용 방안이 강조되는 이유다.
박현주기자〈경북부〉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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