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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문경 산양면 소읍산책, 일제강점기 목조건물 재건축…과거와 현대 공존 복합문화공간으로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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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정행소는 일제강점기 양조장 건물을 거의 다 해체해 재건축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해주는 핵심 부분은 보존하면서 현대적 요소를 티 나지 않게 끼워 넣었다.

읍내는 격자형이다. 격자를 만드는 도로는 편도 1차선으로 노란 중앙선까지 그어져 있다. 고샅이라고 할 만한 골목길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중앙 도로를 중심으로 골목길이 요리조리 흩어지는 고전적이고 익숙한 소읍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읍내의 전체 땅 모양은 직각삼각형에 가깝다. 남북으로 길고 동서는 조금 짧다. 동쪽에는 금천이 흘러 직각삼각형의 빗변은 호를 이룬다. 호에 접한 블록은 비정형을 띠지만 나머지 각각의 블록은 확고한 사각을 이루고 있다. 소읍의 지도를 이렇게나 즉각적이고 확실하게 몸으로 느낀 것은 처음이다.

석탄산업과 함께 번성 산양양조장
지역경제 침체되며 막걸리 생산 멈춰
道 산업유산 지정후 문경시가 사들여
카페운영·전시 '산양정행소' 재탄생

맞은편엔 '옛 문경금융조합 사택'
1945년 건립 전형적 일본식 주택건물
근대의상 대여·흑백사진관으로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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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리 동쪽에 금천이 흐른다. 둑길은 벚나무 산책로로 봄날 벚꽃으로 이름 높다.

◆산양면 불암리

산양면은 문경의 동남부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상주와 가깝고 동쪽으로는 예천과 접해 있다. 당진에서 영덕을 잇는 34번 국도가 동서로, 낙동에서 충북 단양으로 향하는 59번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두 도로가 교차하는 자리에 산양면 소재지인 불암리(佛岩里)가 자리한다. 불암리는 마을 서쪽 산의 바위에 봉황새가 깃들었다고 봉암(鳳岩)이라 했다가 이후 바위의 모양이 부처같이 생겼다고 해서 불암이 되었다. 원래는 금천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1910년대에 큰 홍수가 난 뒤 금천의 서안으로만 마을이 번성했다고 전한다. 그 후 근대에 이르러 지금처럼 구획된 도시형 마을로 새롭게 조성되었다고 한다. 금천 둑길에 벚나무 그늘이 짙다. 마을의 길고 낮은 담벼락은 그림으로 가득하다. 대부분 조선시대를 담은 풍속화로 특히 소와 농사에 관련된 그림이 많다. 산양면의 특산물이 쌀과 한우라 한다. 주민 대다수가 농민이며 그들은 새재청결미, 새재바로미와 같은 친환경 쌀을 재배하고 볏짚을 활용해 고급 문경한우를 키운다.

읍내의 중앙 블록에 핵심 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지방도가 갈라지는 불암사거리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첫 번째 블록에 파출소와 버스정류장, 두 번째 블록에 산양면행정복지센터, 네 번째 블록에 문경산양우체국이 있고, 다섯 번째 블록에는 모서리에 자리한 철물점 앞에 버스 승강장이 있다. 간판도 없는 산양철물점 입구에 자그마한 평상이 놓여 있다. 가게의 낡은 지붕이 평상위로 길게 차양처럼 드리워져 있고 노인들은 그늘진 평상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1시간마다 1대씩 온다. 그리고 오후 7시면 버스가 끊긴다. 파출소 버스정류장과 철물점 버스 승강장을 직선으로 잇는 불암 2길이 읍내의 중앙도로로 여겨진다.

옛날에는 2일과 7일마다 산양장이 섰다. 조선 중기 이전부터라 한다. 마을 중앙도로를 중심으로 장이 섰는데 동쪽에 우시장, 북쪽에 곡물전, 남쪽에는 채소전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우시장은 전국의 소장수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시장이었고 해마다 전국장사씨름대회가 열렸다고 전한다. 산양장은 교통이 편리해지고 점촌이 도시화되면서 사라졌다. 김천과 영주를 잇는 경북선의 산양역도 불암리에 있었다. 문경의 철도역사는 1924년에 시작되지만 산양역이 생겨난 것은 광복 후인 1966년이다. 1984년에 무 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이듬해 역사마저 철거되었지만 역명만 있는 채로 10년 넘게 승객을 태웠다. 산양역은 1998년 1월1일에 여객취급이 중지되었고 2001년 7월1일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34번 국도변에 있는 불암리 마을 표지석 옆에 철문으로 폐쇄된 곳이 옛 산양역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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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드는 산'은 1945년에 건립된 옛 문경금융조합 사택으로 개량한복 및 근대 의상을 대여하는 공간과 흑백사진 셀프스튜디오로 이용되고 있다.

◆'산양정행소'와 '볕 드는 산'

슬쩍 빼놓았던 읍내 중앙의 세 번째 블록 이야기를 해야겠다. 거기에는 일제강점기인 1944년에 일본식 목구조로 지어진 산양 양조장 건물이 있다. 문경은 1926년에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산 개발이 시작되었고 이후 30개가 넘는 광산이 운영됐었다. 산양협동주조장으로 시작된 산양 양조장은 광산개발로 성장했고 1960년대까지 문경의 석탄산업 부흥과 함께 번성했다. 그 가운데 6·25전쟁 이후 우시장의 확대도 양조장의 번성에 한몫을 했다. 8명의 일꾼이 일을 하고 한 달에 200말의 막걸리를 생산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1985년 정부가 석탄 광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산양역이 철거된 해다. 문경 탄광도 하나둘 사라졌고 인구는 반 토막이 났다. 지역 경제가 침체되면서 산양장이 사라졌다. 산양 양조장은 1998년에 막걸리 생산을 멈췄다. 산양역 여객 취급이 중지된 해다.

지금 산양양조장은 '산양정행소'라는 이름의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다. 2018년 경북도가 산업유산으로 지정한 후 문경시가 사들여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꿨다. 사무실과 숙직실은 지역의 다양한 문화상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다. 긴 시간 증축을 반복해 원형을 파악할 수 없는 부속 공간들은 주방과 기능실이 됐다. 그리고 트러스 구조의 넓은 발효실은 베이커리 카페이자 전시장이고 무대다. 오래된 건물을 다시 살리기 위해 건물의 구조물을 거의 다 해체해 재건축했다고 한다. 재생이 가능한 곳은 기존 목조 건축 양식으로 복원했고, 붕괴 위험이 있던 벽은 현대적인 기법과 재료로 새롭게 세웠다. 오래된 기둥은 썩은 밑동을 잘라내고 새 목재를 이어 붙였다. 근대 건축을 상징하는 트러스는 해체와 보수과정을 거쳐 다시 설치했다.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해주는 핵심 부분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얇은 철제 창호, 높은 폴딩도어, 강판 캐노피, 단순한 조명과 가구 등 현대적 요소를 티 나지 않게 끼워 넣었다. 산양정행소는 2020년 제15회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우수상과 함께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산양정행소 맞은편에는 옛 문경금융조합 사택이 있다. 1945년에 건립된 단층주택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289호다. 지붕은 한국 전통의 우진각지붕 형식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일본식 주택 양식이다. 현관을 건물 후면에 두었고, 안방에는 도코노마를 배치했으며, 각 실 전면에 마루에서 연결되는 복도가 이어져 있는 등 일본식 주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 사택 건물의 이름은 '볕 드는 산'이다. 이곳은 개량한복 및 근대 의상을 대여하는 공간과 흑백사진 셀프스튜디오로 이용되고 있다.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현대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산양. 많은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많은 것들이 새롭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향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점촌함창IC로 나간다. 톨게이트 지나 3번국도 상주, 점촌 방향 오른쪽으로 빠져나가 직진, 사아매교차로에서 오른쪽 안동·예천방향 34번 국도로 빠져나가 직진, 윤직교차로에서 안동·예천방향 오른쪽으로 나가 경서로를 타고 계속 직진한다. 산양삼거리에서 오른쪽 단양·산양 쪽으로 나가면 국도 오른쪽에 불암리 표지석이 있다. 직진해 굴다리 지나면 왼편에 산양면 읍내가 나온다. 불암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두 번째 블록에 행정복지센터가 있고 세 번째 블록에 산양정행소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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