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제빵소 유강우씨 '꾸준함' 무기로 정식근무 5년째
직업교육 받은 후 비장애인과 똑같은 절차 거쳐서 채용
다양한 꿈 꾸는 발달장애인 많지만 10명 중 7명 미취업
중증장애일 경우 주간보호센터 이용마저 하늘의 별따기
대구에서 청년 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지원(24)씨가 그의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동현 수습기자 |
◆'남산제빵소' 직원 유강우씨…"멋진 하모니스트가 꿈이에요"
"장애인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일을 꾸준히 해서 나라에 세금도 내는 하모니카 연주자로 '맑은소리 하모니카 연주단'과 멋진 연주도 하고 공연도 다닐거예요"
대구 중구에 위치한 카페 '남산제빵소'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인 유강우(25)씨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26일 오후 2시쯤 방문한 남산제빵소. 유니폼을 입고 앞치마를 둘러맨 강우씨가 카페 내부를 이곳저곳 돌며 매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강우씨는 야무지게 걸레로 테이블을 닦고, 삐져나온 의자를 각 맞춰 집어넣었다.
강우씨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정도 일하고 있다. 일이 많거나 바쁠 때는 여럿이 도와서 직원분들이랑 일을 나눠서 한다. 새로 들어온 친구가 일이 힘들어 보이면 도와주기도 한다"라며 듬직한 자태를 보였다. 강우씨는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한 뒤, 특수학교에서 전공과정을 통해 직업교육을 받았다. 이후 대구의 발달장애인 고용기업인 '브레드인스마일'에 지원서를 넣고 서류·면접 과정을 치르는 등 비장애인과 똑같은 채용 절차를 거쳐 직원으로 고용됐다.
현재 남산제빵소를 비롯한 카페·음식점을 운영하는 '브레드인스마일'에 정식 고용된 발달장애인만 전체 직원(55명)의 70%(37명)이다.
팽고은 브레드인스마일 대표에 따르면, 이곳의 발달장애 직원들은 정식 근무에 투입되기까지 1년의 교육 시간을 가진다. 발달장애인 특성상 미세한 손놀림에 필요한 소근육 발달이 느리고, 이른바 '센스'라고 표현되는 시지각능력·판단력 등을 다듬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루틴이 일단 생기면 누구보다 꾸준히 일한다는 점은 이들의 경쟁력이다. 팽 대표는 "먼저 시범을 보여야 하고 작업 도구도 직관적으로 이해시켜야 해서 교육이 다소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일단 교육이 되면 자신의 일은 누구보다도 꾸준히 한다"고 웃어 보였다.
◆함께 일해서 즐거운 '브라보비버대구'…"새로운 꿈 위해 도전하고 있어요"
같은 날 오후 대구 북구의 발달장애인 고용 사업장 '브라보비버대구'. 발달장애인 54명이 일하고 있다.
이날 만난 3명의 직원은 일을 시작한 지 갓 2개월을 넘긴 '신참'들이었다. 서로를 'OO님'으로 부른다는 이들은 동료들이 있어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황가영(여·23)씨는 "팀장님을 비롯한 동료들이 정말 좋다. 실수를 조금 해서 걱정은 되지만 크게 어려운 것은 없어서 일을 재밌게 하고 있다"며 "가족과 친구들이 아닌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 어울려 생활하는 게 보람차다"고 미소 지었다. 새로 입사한 김시현(여·22)씨도 "동료들과 업무시간 외에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너무 친하게 지내서 장난을 치다가 실수할까 봐 업무시간에는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비장애인처럼 다양한 기업·단체에 고용되지 못해 아쉬움도 느끼고 있었다.
급식보조로 일했다는 시현씨는 "여기에서 일하기 전엔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카페에 취업하기도 어려웠고 단순노동 공장이 전부였다"며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공기업 홍보팀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정지원(24)씨도 "대학을 마치고 2개월 동안 공공기관 사무보조 일을 했었다. 그런데 인턴기간이 짧아서 너무 아쉽다"라고 전했다. 이곳 직원들은 단순히 주어진 직업이 아닌 자신만의 다양한 '꿈'을 갖고 있었다. 급여의 많은 부분을 반려동물에게 쓴다는 가영씨의 최종 목표는 '애견관리사'다. 가영씨는 "드립커피를 제조하는 이 일이 재밌고 좋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공부해나갈 생각"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지원씨는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제과제빵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발달장애인 10명 중 7명 취업 못해…국가적 지원 여전히 절실
일찍이 재능을 발견하고 대구에서 청년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지원(24)씨는 '꿈 꾸는 발달장애인'의 좋은 성장 사례다. 지원씨는 올해 대구예술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주>더휴 소속 미술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원씨 아버지는 "어릴 적 지원이가 태권도 학원을 다녀 보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그러다 취미로 다니던 미술학원에서 중학교 2학년 때 진로를 정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제도적 지원 없인 꿈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지원이가 미술가로 성장하기까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마음으로그리기상담센터의 지원이 있었다.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과 회사에 소속돼서 그림 그린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고 지원이도 그걸 안다"라고 그는 전했다.
'제2 우영우'가 넘쳐나는 세상이 되기 위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발달장애인 10명 중 7명은 여전히 직업도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2021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발달장애인 취업자는 고작 29.3%에 그친다.
이러한 현실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자녀의 자립을 두고 걱정을 접을 수 없다. 중학생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신수경(49)씨는 "고등학교 졸업 시기까지 최대한 생활연령을 높여서 취업시키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하지만 인지가 좋은 친구들도 취업하기 어려운데, 아이가 중증이면 사회적기업이라도 채용이 어렵다"라며"중증 장애인은 평생 교육을 전제로 두고 있지만 주간보호센터 이용도 경쟁률이 높다. 현재로선 가정에서 책임질 수밖에 없어 자립은 남의 이야기"라고 토로했다.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이동현 수습기자 shinea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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