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종묘산업특구 '무병화묘목 생산' 전초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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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어린나무를 의미하는 '무병화묘목'은 세계적 경영 리더인 댄 히스의 저서 '업스트림'에 나오는 개념과 일치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고방식을 제시했다. 그는 "문제의 발생 지점(업스트림)에서 조금 더 앞으로 가서 그 문제 자체를 차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로 인한 과수농가의 피해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해 주는 것이 바로 무병화묘목이다.
사과·포도 등 바이러스에 감염땐
생산량 20~40% 줄고 당도 떨어져
종묘기술센터 조직배양·검정작업
바이러스 없는 '모수' 상당수 확보
대량 보급 이뤄지면 가격도 안정화
◆바이러스의 피해와 종류
과수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생산량은 20~40% 정도 줄어들고, 당도는 2~5브릭스(Brix) 낮아진다. 착색 불량과 기형도 나와 과일의 상품성을 크게 훼손한다.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고접병 유기 바이러스(ACLSV)에 감염된 홍로 사과나무의 경우 열매 무게 212.5g, 당도 12.5브릭스로 무병묘에서 수확한 사과(225g, 15.2브릭스)의 82~83% 수준에 그쳤다. 한국원예학회지에 게재된 거봉 포도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포도잎말림바이러스(GLRaV-3)에 감염된 것은 15.9브릭스로 무병화묘목의 19.8브릭스와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색소 함량은 0.763으로 무병화묘목 1.381보다 많이 낮다.
경산종묘산업특구에서 생산되는 과수 중에서 사과·포도·복숭아·배 묘목의 비율은 79.5%다. 전체 과수 중 사과가 45%로 가장 높고 포도는 18%를 차지한다. 현재 법에서 규정하는 사과 바이러스와 바이로이드(바이러스와 유사하지만 크기가 작음)는 모두 5개다. 이 중 사과바이로이드(ASSVd)는 색을 균일하게 내지 못하게 만들어 사과가 얼룩덜룩해진다. 포도 경우 세 개의 바이러스 중 GLRaV-1, 3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잎을 우글우글하게 만들어 광합성에 지장을 준다. 따라서 당도도 떨어진다.
◆'바이러스 제로' 투트랙 전략
무병화묘목을 생산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조직배양실에서 생산하는 방식이다. 열처리, 생장점 배양, 식물체 양성, 바이러스 검사 등의 1차 선발 단계(3년)를 거친 후 바이러스 검사, 특성 조사, 접목증식까지 총 8년이 걸린다. 이렇게 생산된 모수(母樹·어미나무)는 묘목농원에 보급돼 균일한 무병화묘목을 대량으로 증식한다. 또 다른 방식은 바이러스가 없는 과수를 과수원에서 직접 찾는 것이다. 과일이 크고 색깔도 좋은 과수를 선발해 바이러스 여부를 검사한다. 역전사 중합효소 연쇄반응법(RT-PCR) 검사를 통해 바이러스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과수를 모수로 활용해 묘목을 생산한다.
2011년 설립된 경산종묘기술개발센터는 조직배양실과 바이러스검정실을 운영하고 있다. 사과·포도의 종묘연구포장(묘목 재배 토지)도 7천654㎡를 갖췄다. 박철호 경산시 종묘산업팀장은 "과수원에서 바이러스 없는 과수를 찾아내 생산된 묘목은 판매 전에 일일이 바이러스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단점이 있다. 조직배양실에서 만들어낸 무병화묘목이 본격 보급되기 전까지 임시방편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무병화묘목 보급 초기에는 가격이 다소 높을 수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과실 손실을 따져봤을 땐 오히려 유리하다. 대량으로 보급되면 가격도 상당히 안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병화묘목을 생산해 국가적인 유통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이탈리아·미국 등이 있다. 일본은 묘목회사 차원에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정 후 판매한다. 네덜란드에서는 거의 보편화했다. 생산되는 전체 묘목의 75%가 무병화 인증 묘목이다. 과수묘목은 90% 이상 차지한다.
◆무병화묘목 생산 가속도
농진청은 2020년 6월 현재 국가가 육성한 108개 품종 중 98개를 무병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중 79개는 중앙과수묘목관리센터와 감귤농협에서 무병화묘목 생산에 활용한다. 기존에는 품종이 최종 선발되고 등록이 된 후 무병화작업을 했지만 현재는 품종 선발 전 단계인 우량계통부터 무병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 시스템보다는 7년 정도 공급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부터 무병화묘목 생산 작업에 들어간 경산종묘기술개발센터는 2개의 사과품종에서 무병화를 완료해 바이러스가 없는 대목(접 붙일 때 바탕이 되는 나무) 모수를 상당수 확보하고 있다.
무병화묘목 보급이 확대되기 위해선 접을 붙이는 묘목농에게도 과제가 있다. 박철호 팀장은 "접수(대목에 접붙이는 나뭇가지)포장과 대목포장을 갖추고 있어야 무병화묘목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이 중 하나의 포장만 갖고 있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접수나 대목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산지역 대형 묘목농원에서는 두 개의 포장을 갖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꽤 있다"고 설명했다. 정희진 경산묘목조합장은 "묘목농가들은 무병화묘목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만큼 보급확대를 위해서는 시설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선 국립종자원이 과수 무병화와 바이러스 검정을 총괄하고 있다. 신품종이나 기존품종 중 계통의 유전적 특성이 변화되지 않도록 유지해 종묘 증식의 근원이 되는 '원원종(原原種)'의 관리기관으로는 농촌진흥청(직무육성품종)·중앙과수묘목센터(도입품종) 등이 지정돼 있다. 원종 및 모수는 무병화관리기관에서 담당한다.
연간 2천만 주의 과수묘목을 생산하는 경산종묘산업특구는 우리나라 무병화묘목 보급의 핵심역할을 한다. 이수일 경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은 "경산 묘목의 생산방식은 갈수록 향상되고 있고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무병화묘목 보급에도 앞장서 과수농가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윤제호기자 yoonjh@yeongnam.com

윤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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