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중옥 대구서 10년 연기 활동
상경 후 이방인처럼 향수병 힘들어
복잡·다양한 감정 묶어 내는 데 집중
서스펜스 날카롭게 파헤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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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영화·예능·드라마 등에서 감칠맛 나는 조연으로 활동해온 대구 출신 배우 이중옥이 18일 개봉하는 영화 '파로호'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
대구 출신 배우 이중옥이 인기다. 개성 있는 마스크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연극과 스크린의 감칠맛 나는 조역으로 눈길을 끌더니 종편 드라마, 지상파 예능으로까지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급기야 18일 개봉하는 장편영화 '파로호'에서 첫 주연을 맡아 스크린을 달굴 채비를 마쳤다.
이 배우는 20여 년 전 대구지역 극단 '연인무대' 단원으로 연극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대구서 꼬박 10년을 활동한 후 서울로 무대를 옮겼다. 2007년 영화 '밀양'의 단역으로 본격적인 영화 인생을 시작한 그는 이후 '마약왕' '극한직업' '히트맨' 등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첫 주연영화 '파로호'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출연 계기는.
"처음 회사를 통해 대본을 받게 됐다. 작품이 좋아 바로 감독미팅을 진행했는데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음에도 2시간이 훌쩍 지났을 정도로 이야기에 몰입했다. 평화로운 호수 파로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렸는데, 배우의 내면을 끄집어내고 사람을 중심에 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도우와 작품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강원도 화천에 가면 실제로 파로호라는 호수가 있다. 노총각인 주인공 도우는 파로호가 있는 강원도 마을에서 치매 노모와 알프스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노모가 사라지고, 이를 계기로 묻혔던 옛 진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심리스릴러를 연기하기가 어렵지 않았나.
"지금까지 악역 전문배우로 활동해 왔는데 연기라는 큰 틀에서 보면 어떤 역할이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까지의 연기가 짧은 호흡으로 하나의 장면에 집중하는 역할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상대 배우의 리액션을 받아서 작품을 이끌어야 했기 때문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인물이 가진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의 레이어를 하나로 묶어서 보이는 데 능력을 집중했다."
▶10여 년 전 대구를 떠나 서울로 무대를 옮겼는데.
"서울로 올라오기 전 대구에서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1년에 연극 7~8편은 기본이고 오페라·뮤지컬·단막극까지 대략 14~15편에 출연했다. 10년쯤 활동했을 때 매너리즘에 빠진 듯했고, 큰물에서 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즈음 서울지역 극단 차이무의 연출자가 객원 연출을 하러 대구에 왔는데, 3~4작품을 같이 한 후 내게 서울서 새로 구상하는 작품의 출연 제안을 했다. (송강호·유오성·문성근·강신일·문소리·전혜진) 대배우들을 배출한 차이무는 내게 꿈의 무대였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차이무가 사라지고 없지만, 그곳에서 연기에 임하는 자세 등을 배울 수 있었다."
▶낯선 서울에서의 활동에 어려움도 많았을 듯한데.
"지금까지 고생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거의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지만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기에 고생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구서 활동할 때는 선후배 간의 정도 있었고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이 있었는데, 서울에서는 늘 이방인처럼 둥둥 떠 마음 둘 곳을 찾기 어려웠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향수병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최근 예능가에서 '新예능 치트키' '쁘띠 빌런' 등의 애칭으로 불린다던데.
"서울 와서 사귄 친한 친구 중에 오대환이 있는데, 그가 소개해 줘 '악카펠라'라는 예능에 출연했다. 악역 전문 배우들이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는데, 재밌게 촬영했다. 사실 예능 출연은 그동안 쌓은 이미지를 깎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여러 좋은 배우들과 재밌게 촬영했고, 내 연기 인생에도 활력소가 된 듯하다."
▶(사실 그는 소문난 예술가 집안에서 성장했다. 2008년 작고한 큰아버지 이필동은 대구지역 1세대 연극인으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초대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작은아버지 이창동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밀양' 등을 연출한 국내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이다. 또 그의 아버지 이기동, 작은아버지 이준동 등도 문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가족의 입장에서 이들 예술인을 표현한다면.
"이필동 큰아버지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온기가 느껴지는 정말 큰 어른이었다. 꼼꼼하고 정확한 연출 디렉션은 물론 사람됨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 이창동 감독과는 솔직히 같은 영화계에 있기에 혹여라도 나로 인해 말이 날까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
▶가장 운명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사실 대중에게 나를 각인시킨 작품은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극한직업'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흥행은 다소 덜 됐지만 2018년 개봉한 '마약왕'을 운명적 작품으로 꼽고 싶다. 당시 결혼하고 어려운 경제 형편에 가정을 꾸려나가기가 버거웠는데, 아내가 오디션 공고를 주면서 가보라고 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이후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영화 인생에 봄날이 찾아왔다."
▶대중에게 앞으로 어떤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나.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고, 관심받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연기를 오래오래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또 지금까지 스크린에서 주로 악역을 맡아 연기했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이미지가 굳어진다며 걱정하지만 나는 이왕이면 악역을 더 해보고 싶은 소망도 있다. 악역이라고 하면 이중옥이 떠오를 정도로 제대로 된 악역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하"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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