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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준의 閑談漫筆] 죽치고 있네

2022-08-26

조선시대 '죽치는 일' 유래
먹고살기 위한 허드렛일
지금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
노력 비해 보잘것없는 결과
무능력 조롱·빈정거림 뜻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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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죽치다' '죽치고 있다'라는 말을 가끔 들어본다. 그런데 이 말은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 어떤 종교인은 '죽치다'의 '죽'을 대나무로 여겨서 대밭에서 심심풀이 삼아 낫으로 대나무를 마음대로 치고 다닌다는 뜻으로 풀이하는가 하면, 어떤 음식 전문가는 죽을 끓일 때 다 끓여졌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주걱으로 솥 안의 죽을 툭툭 쳐 보는 행위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학자는 '죽치다'의 '죽'을 어깻죽지의 죽으로 보아 어깻죽지가 늘어질 정도로 아무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죽치다'의 어원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죽치다'는 '죽'과 '치다'로 분리해서 살펴봐야 한다. '죽'은 옷이나 그릇 열 벌, 짚신 또는 미투리 열 켤레를 세는 단위다. '치다'는 '때리다' '가리다' 등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어떤 행위를 하다'라는 뜻도 있다. 예를 들면 '벽을 만들다'는 뜻으로 '벽을 치다', '술잔에 술을 따르다'는 뜻으로 '술을 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신었던 신발은 짚신과 미투리였다. 길손들이 길가나 주막 등지에서 새 신으로 갈아 신은 뒤에 그대로 버려 놓은 낡은 짚신, 즉 갱기가 터지거나 밑바닥이 헤져 더 이상 신지 못하게 된 헌신짝이 굴러다니면 별다른 생계 수단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헌 신발을 주워 모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도 높은 양반가가 즐비한 북촌, 부유한 중인들이 모여 있는 남촌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문전 애걸하여 헌 짚신이나 미투리를 거저 얻다시피 했다. 그렇게 줍거나 얻어온 헌신짝을 한데 모아 놓고 한 짝 한 짝 면밀히 살펴서 살릴 것은 살리고 뜯어낼 것은 뜯어내어 고치고 다듬은 뒤에 다시 성한 신발 형태로 삼아 냈다. 그리고 그렇게 삼은 신을 열 켤레씩 둥글게 엮었다. 그걸 두고 죽을 친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렇게 죽치는 일은 먹고살기 위하여 마지못해서 하는, 부가가치가 가장 낮은 일이었다. 짚신이나 미투리를 삼는 건 큰 기술이 필요치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새 신을 삼는 것도 아니고 헌신짝을 모아서 중고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더없이 하찮게 취급되었다. 기껏 죽을 쳐서 승혜전이나 마혜전에 팔아넘겨도 생계를 이어갈 만한 대가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지라 그 일조차 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기 십상이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들인 품에 비하여 벌이도 거의 안 되면서 시간만 많이 잡아먹는 일이어서 사람들이 다 허드렛일 중의 허드렛일로 여겼던 죽치는 일. 세월이 흐르면서 '죽치다'라는 말은 어떤 일에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획득하는 결과가 보잘것없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고, 무능력을 향한 조롱과 빈정거림의 의미까지 내포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별로 보람 없는 일을 하면서 시간만 축내는 상황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이르는 말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쓰여 왔다. '죽치고 있다'라는 말이 '축 처져 있다' '풀 죽어 있다'라는 말과 유사한 까닭에 기력이 쇠잔한 상태라는 의미로 잘못 쓰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또 '죽치다'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때리거나 치는 것을 뜻하는 '즉치다'라는 말과 혼동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인플레이션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다 하여 모든 국민이 어려운 시기다. 모두가 힘들어할 때 기어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이 삶의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환경과 처지를 핑계로 죽치고 앉아서 신세한탄만 하는 사람에게는 더 나은 미래가 있을 리 없다.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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