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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우광훈의 장정일 傳] (14) 장정일 형의 충고 "광훈씨,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해야죠"

2022-08-26

[소설가 우광훈의 장정일 傳] (14) 장정일 형의 충고 광훈씨,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해야죠

2005년 12월, 장정일 형 그리고 형의 지인들과 함께 수성하이츠 상가에 있는 '더 그릴'이란 술집에서 망년회를 가졌다. 한동안 형과의 연락이 뜸했던 터라 만나자마자 형의 근황에 관해 숨 가쁘게 물었다.

KBS1 'TV, 책을 말하다'의 MC를 그만 둔 형은 소설가 H씨의 권유로 내년 봄 학기부터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희곡창작 강의를 맡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개인 사정으로 인해 서울 회기동 쪽에 집을 구했다는 것이었다.(다행히 대구의 집은 아직 처분하지 않은 듯했다.) 난 다시 형에게 "서울에 완전히 정착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었고, 형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네요"라며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순간, '형이 없는 대구란 나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란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건 정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그 자체였으니까.

내 소설 발간 늦어져 출판계약 파기
속된 욕망에 점령됐다고 자학하자
"문학상 출품하는 건 아니겠죠"라며
고민 털고 다른 곳 원고 넘기라 해

그리고 다음 해 가을, 나는 만촌동 메트로팔레스 상가 옆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형을 만났다. 작년 망년회에서 얼굴을 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다음 날이 추석인지라 형에게 과일 한 상자를 선물했다. 이제 형을 자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가방에 카메라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결국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아니 찍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호프집에서 나온 우린 곧장 형의 아파트로 가 와인을 마셨다.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흐르고, 우린 서로의 근황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난 몇 번을 망설이다 취기를 빌어 고백했다. 형이 관심을 가져준 내 소설 원고의 계약을 파기했다고. 출판사 '랜덤하우스중앙'이 '랜덤하우스'와 '중앙M&B'로 분리됨으로 인해 내 원고의 출간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따라 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고. 그렇게 또 다른 모험을 벌이기로 했다고.

"형, 예전 전 소수의 독자만이 제 작품에 열광하는 그런 유니크한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달랐죠. 어느 날 문득, 명성이란 것이 그리워졌어요. 그 명성에 대한 갈망이, 아니 속된 욕망이 저를 점령하고 말았어요.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데, 명성이란 스스로 부여하는 게 아니라 그에 맞는 합당한 자격을 갖춘 다음 기다려야 하는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어요. 고전의 충고는 찰나에 불과했고, 아귀 같은 녀석의 집요한 유혹에 전 결국 넘어가고 말았던 거죠."

헤르만 헤세의 전집이 녹나무처럼 펼쳐진 탁자 앞에서 내가 이렇게 고백하자, 형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광훈씨, 오늘 왜 그래요? 네? 욕심이 생겼다고요? 그거 당연히 있어야죠. S씨가 왜 소설을 더 이상 못쓰는지 알아요? 그 사람 재능은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허영이 없었죠. 성공해야겠다는 욕심이 없었던 거예요. 허영, 그거 나쁜 거 아니에요. 허영이 없는 예술가는 지금의 그 자리에 쉽게 안주해 버리죠. 하지만 재데뷔, 그건 정말 꼴사나운 거예요. 설마, 어디 문학상에 내려는 건 아니시겠죠? 훈장 더럭더럭 달아놓는다고 명성이 쌓이는 건 아니니까요.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해야죠. 광훈씨 정도면 해서도 안 되고요. 그게 아니라고요? 그럼, 왜 그래요? 광훈씨 지금 뭔가 대단한 걸 썼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도 예전엔 그랬어요. 내가 쓴 시(詩) 한 편에 세상이 발칵 뒤집힐 줄 알았어요. 밤새 게워낸 언어의 장정들 앞에서 부들부들 떨던 내 어릴 적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네요. 하지만 세상, 안 뒤집혔잖아요.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다른 출판사에 원고 넘기세요."

그날, 형이 나에게 들려준 이 말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족 하나. 내가 장정일 형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년은 자라면서 부모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지고 부모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그 어깨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따라 소년은 성장을 멈추고 만다. 시를 쓸 때도, 소설을 쓸 때도 그는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소년'의 양식에 몰입하였고, 그리고 결코 그 속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장정일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의지로 되찾은 유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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