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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표절과 곡학아세

2022-08-25

국민대 조사위 면죄부 헌정

김건희 논문의혹 餘震 계속

교육부 대응 민망스러워

숙명여대도 본조사 미적

국민검증단 어떤 결론 낼까

[박규완 칼럼] 표절과 곡학아세
논설위원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입체주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의 어록이다. 본인도 많이 훔쳤다는 고해성사일까. 훔친다? 기실 '훔치다(steal)'엔 다양한 함의가 있다. 이성의 마음을 훔치면 성공한 연애가 되고, 첨단 전투기는 하나 같이 스텔스(stealth) 기능을 장착한다. 야구에서도 주자가 베이스를 훔치는 데 성공하면 안타 없이 2루도 가고 3루도 간다. 심지어 홈스틸까지. 물론 실패하면 아웃이다. 피카소는 '훔치는 기술'을 말했을지 모른다. '표절의 기술'일 수도 있겠다. 그대로 베끼면 표절이지만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면 창조적 모방이니까.

공자도 논어에서 은근히 모방을 권유했다. '서술하되 새로 짓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 이 말을 신봉했을까. 한나라 문인 양웅은 논어를 모방해 법언(法言)을 짓고 주역을 본떠 태현(太玄)을 편찬했다. 조조는 고대 병법가의 저술을 연구하고 발췌한 주석을 손자병법에 붙여 '위무주손자'란 병서(兵書)를 만들었다. '오마주' '패스티시' 같은 용어도 인용·모방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웅변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가 명쾌하게 정리했다. '완전한 창조는 신의 영역이다. 인간의 발명·창작은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데서 나온다'.

아마도 김건희 여사는 '훔치는 기술'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논문 표절 의혹의 여진(餘震)이 이어진다. 국민대 재조사의 적정성이 논란의 진앙이다. 국민대는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과 학술지 논문 3편 등 4편의 논문에 대해 3건은 연구부정행위가 없었고 나머지 1건은 검증불가라는 결론을 냈다. 노골적으로 면죄부를 헌정한 셈이다. 국민과 학계는 국민대 판정을 도무지 못 믿겠다는 입장이다. 온라인 댓글엔 '희대의 날조심사' '방탄 심사'란 조롱이 쏟아졌다. 사립대교수연합회 등 13개 교수·연구자단체는 '범학계 국민검증단'을 구성해 김 여사의 논문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세태에 그나마 경종이 될 법하다.

숙명여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건희 여사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를 심사하고 있는 숙명여대는 지난 3월 예비조사를 마치고도 5개월째 본조사를 뭉개고 있는 상황이다. 숙명여대 교수들은 "김건희 여사의 석사 논문 표절률이 48% 이상"이라고 밝혔다.

국민대는 논문 재조사 결론이 떳떳하다면 재조사위원회 명단과 회의록, 최종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 왜 공개하지 못하나. 구닥다리 국정원 원훈처럼 음지에서 심사하고 양지를 지향하겠다는 건가. 국민대가 도이치모터스 주식 30만주를 사들인 것도 수상쩍다. 김건희 여사-국민대-도이치모터스 커넥션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교육부의 대응도 민망스럽다. 국민대 입장을 존중하겠단다. 차라리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낫지 않나. 존중할 게 그리도 없나. 온 국민이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논문 재조사 결과를 존중하다니. 부실심사 여부를 감사(監査)해도 모자랄 판에. 5세 취학에 이은 '영혼 없는 교육부' 2탄이다. 불륜과 사랑,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표절과 모방의 경계는 꽤 명확하다. 남의 논문을 따오고 싶으면 인용했다는 각주를 붙이면 된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베끼는 건 자기 연구인양 위장하겠다는 후흑(厚黑)이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국민대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니 5년 동안 김건희 여사의 논문 검증을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한데 대통령 영부인 논문이 곡학아세로 왜곡된다면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있겠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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