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본에 맞선 86세대 투쟁
민주화 정착서 경쟁으로 대체
스스로 불평등 재생산에 앞장
세대 간, 진영 간 극단화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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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 코로나19 대유행, 대통령 선거 등을 거치며 우리 사회는 다양한 구조적 문제를 체감했다.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의 저자는 '공정'이라는 잣대로 경쟁을 내면화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발언을 '개·돼지' 취급하는 비민주적인 사회 분위기를 문제 삼는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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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지음/창비/264쪽/1만7천원 |
한림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한국 대학과 지식생산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절감하며 2019년 대학을 떠난 사회학자 조형근의 저서다. 당시 칼럼 '대학을 떠나며'를 발표하며 미련 없이 강단에서 물러나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자가 대학을 떠난 이후 3년여 동안, 우리 사회는 숱한 사건을 겪으며 균열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조국 사태, 코로나19 대유행, 대통령 선거 등을 거치며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체감했다. '촛불정부'는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되레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세상을 바꾼 줄 알았던 촛불의 의미는 퇴색되고 말았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진리의 보루라는 권위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고 학문탐구보다는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학을 떠난 후 '동네 사회학자'를 자청한 저자는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성찰은 무엇인지를 화두로 던진다.
특히 한때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어느새 '기득권'이 되어버린 진보 지식인 엘리트의 자화상을 되돌아본다. 저자는 '86세대'로 불리는 진보진영의 주역이 20대 시절 독재와 자본에 맞서 세상을 바꾸려고 투쟁했지만, 민주화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투쟁을 경쟁으로 대체했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불평등 재생산에 앞장선 것이다. 이는 세대갈등과 진보-보수 지형을 극단으로 갈라놓은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86세대, 진보, 남성, 엘리트, 지식인인 자신을 먼저 성찰한다. 유독 글을 쓸 때만 정의로워진다는 저자의 자기반성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1부는 대학과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다. 대학의 과거와 미래를 점검하고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대학이 사회 변혁의 주체적 공간이고, 지식인은 그곳의 주역이라는 말이 오늘날에는 성립하지 않음을 뼈아프게 통찰한다. 지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관행이 가진 문제를 짚기도 한다.
저자는 또 지금의 청년 세대와 지난날의 청년 세대에 대한 고민, 그들 사이 불화에 관한 생각도 책에 담았다. 이른바 '20대 남성 보수화론'과 '86세대 책임론'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관통하며 더욱 첨예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저자는 보수화된 20대 남성을 매도하기보다 이 현상을 초래한 사회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2부는 민주주의를 갱신하기 위한 저자의 고민이 담겼다. 세월호 사건의 사회적 의미와 합리적 보수를 바라는 미망에 대한 경계, 주거 빈민의 삶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특히 저자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불평등의 구조와 가난의 대물림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하고 있으며, '선을 지키는' 중산층 민주주의에 만족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공정'이라는 잣대로 경쟁을 내면화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발언을 '개·돼지' 취급하는 비민주적인 사회 분위기도 문제 삼는다.
3부에서는 그간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사회 담론을 검토한다. 먼저 기존의 역사에서 제시되었던 유토피아주의를 통해 새 세상을 꿈꾸는 희망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어서 저자의 주된 관심 중 하나인 '행복경제학'과 '사회적 경제'의 핵심 논지를 점검하고 그 한계를 따져본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고민의 대상이자 주체인 민중과 소수자가 어떻게 만나야 할지도 고민한다. 어떤 대안이든 낙관은 쉽지 않고 과제는 많아 보이지만, '희망이라는 원리'를 붙잡고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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