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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소영〈프란츠클래식 대표〉 |
2019년 동성로축제조직위원회로부터 동성로 플리마켓 기간에 피아노를 3일만 대여해 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다. 피아노 버스킹 존을 설치해 오가는 시민들이 피아노를 쳐보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음악 연습실을 운영해 피아노를 수십 대 가지고 있었지만, 야외에 방치될 고가의 피아노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피아노의 운반과 조율과정을 생각하면 몹시 번거로운 제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획자의 직업병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라도 한 건지, 나는 동성로축제조직위원회에 도리어 역제안을 하고 말았다. 축제에 직접 참여할 테니, 피아노를 동성로 축제가 열리는 15일간 전시할 자리를 확보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이다.
피아노가 설치된 첫날,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지나쳤다. 어떻게 하면 동성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짧은 곡을 연주했다. 연주를 마친 순간 내 주변에는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순간 '그래, 이거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것은 피아노 소리야'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박수를 뒤로하고 건반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중학생 소녀에게 다음 연주를 권유했다. 쭈뼛거리던 소녀의 연주실력은 상당했고, 이 소녀의 용기 덕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성로 피아노 버스킹이 시작되었다.
피아노 연주에 대한 대구시민의 관심은 생각보다 컸다. 나는 동성로축제 기간 매일 동성로로 출근해 피아노의 상태를 살피고 밤낮없이 시민과 소통하며 기록을 남겼다. 하굣길에 매일 들러 피아노를 치고 가는 남학생, 그 남학생의 연주에 매료되어 매일 연주를 보러 오던 여학생들과는 어느덧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시민의 높은 관심과 열정적인 참여로 인해 계획에 없던 '동성로 피아니스타'라는 피아노 콘테스트 행사를 추가로 기획하게 되었고, 인스타그램 게시물 인기투표를 거쳐 수상자도 선정했다.
학원에서 배운 곡을 뽐내는 어린이들과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연주하는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사람의 작은 연주회를 지켜보며 전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 음악의 무궁무진한 가치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발굴하는 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한 '무대 밖으로 나온 피아노의 위대함' 또한 발견했다.
나는 대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무대 밖의 피아노'를 볼 때마다 2019년 동성로 축제를 회상한다. 그리고 대구시민의 피아노 버스킹을 마음껏 감상할 기회가 또 오기를 기대해 본다.
곽소영〈프란츠클래식 대표〉

곽소영 프란츠클래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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