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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판사도 좀 쉬면서 일하게 하자

2022-09-05

소송이 만능인 '소송공화국'

과중한 업무 재판 부실 우려

조정·중재로 분쟁 해결하고

법관 수 증원으로 부담 낮춰

좋은 재판 구현하도록 해야

[아침을 열며] 판사도 좀 쉬면서 일하게 하자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매일 약 1만8천299건의 소송이 제기되는 이 나라는 '소송공화국'이 분명하다. 대법원이 발간한 '2021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법원에 접수된 소송사건은 모두 667만9천233건이다. 당 대표가 소속정당과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나라이니 뭐 크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인내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의 미학이 사라지고, 문제가 생겼다 하면 법원으로 끌고 간다. 지난 2일 김재형 대법관도 퇴임사에서 "입법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인데도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판사 수라도 많으면 모르겠는데 전국 법원을 합쳐봐야 약 3천명 정도이다. 약 668만건의 사건을 3천명이 나누어서 재판하고 있는 형편이다. 간단한 신청 사건을 제외하더라고 절대적으로 과중한 업무량이다. 소송은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경우도 많을 정도로 중요한 것인데 이를 제대로 판단할 시간과 여력이 없다면 그 재판이 부실해질 위험이 높다.

소송의 남발을 막고 제대로 된 재판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재판을 청구하는 쪽과 진행하는 쪽 모두에서 찾아야 한다. 먼저 소송의 절대량을 줄이기 위해 분쟁이 발생하였을 경우 소송 전에 당사자들끼리 화해하는 관행의 형성이 중요한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판결 이외에 조정이나 중재와 같은 대체적 분쟁 해결(ADR) 방법을 활성화하고, 민사처럼 형사에서도 소송비용의 패소자부담원칙을 도입하는 입법을 마련하는 한편, 당사자들이 승복할 수 있을 정도로 1심을 충실화하여 상소를 줄이는 방법 등이 정비되어야 한다.

재판은 판사를 설득하는 작업이다. 판사는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쪽 당사자의 주장이나 증거를 가지고 심증을 형성하고 판결한다. 누구를 설득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판사 1인당 담당하는 사건의 수가 너무 많으면 당사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으면서 제대로 집중하여 정확한 판결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제기되는 사건의 수를 단기간에 줄이는 것이 어렵다면 판사의 숫자를 증원하여 담당하는 사건을 줄여주면 된다. 필자가 대한변호사협회장으로 일하던 2018년에 전국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법관 및 대법관 증원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한 변호사의 94%가 재판심리 충실화 도모, 법원의 업무 과중과 재판지연 해결 등을 이유로 법관 증원에 찬성했다.

한때 판사들은 대부분 법관 수의 증원에 대하여 반대하였지만, 세상이 변하는데 판사라고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 2021년 2월에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개최한 '법관의 업무부담 분석과 바람직한 법관 정원에 관한 모색' 토론회에서 "법관의 적정한 업무부담은 좋은 재판 구현의 전제가 되고, 국민의 권리 보호와도 직결된다"는 의견과 이를 위해 법관 수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전·현직 법관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결과가 발표되었다.

법관도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이고 나아가 사람인데,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야간과 주말까지 바쳐가며 헌신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다. 밤낮으로 기록을 뒤적이고 좁은 사무실과 법정을 오가며 허옇게 뜬 얼굴의 판사와 충분한 휴식과 적절한 업무량으로 자신의 사건에 집중해 주는 심신이 모두 건강해 보이는 판사 중에 누가 더 신뢰감이 가는지는 설문조사를 하지 않아도 경험칙상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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