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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의 시와 함께] 정윤천 - 발해로 가는 저녁

2022-09-05

발해에서 온 비보 같았다

내가 아는 발해는 두 나라의 해안을 간직하고

있었던 미쁘장한 한 여자였다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자전거를 다루어 들을 달리던

선친의 어부인이기도 하였다

학교 가는 길에 들렀다던 일본 상점의 이름들을

사관처럼 늦게까지 외고 있었다

친목계의 회계를 도맡곤 하였으나

사 공주와 육 왕자를 한 몸으로 치러 냈으나

재위 기간 태평성대라곤 비치지 않았던

비련의 왕비이기는 하였다


병동의 복도는 사라진 나라의 옛 해안처럼 길었고

발해는 거기 눈을 감고 있었다

발목이 물새처럼 가늘어 보여서 마침내 발해였을 것 같았다

사직을 닫은 해동성국 한 구가

아직 닿지 않은 황자나 영애들보다 서둘러 영구차에 오르자

가는 발목을 빼낸 자리는

발해의 바다 물결이 와서 메우고 갔다

발해처럼만 같았다


정윤천 / 발해로 가는 저녁


해동성국 발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발해를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발해는 "두 나라의 해안을 간직하고 있었던" 어머니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입원했던 병동의 긴 복도 사이에 발해의 성터가 있다. 결코 잊어버릴 수 있는 운명처럼 북쪽 발해의 발자국은 남쪽으로 내려와서 우리를 간섭한다. 우리와 함께 영구차를 타고 모서리에 쭈그려 앉는 발해의 눈매는 슬프다. 하지만 발해의 바다는 우리의 망각을 쓰다듬는 다정한 손바닥을 가졌다. 누군가 속삭일 때 우리의 기억 한쪽이 따뜻한 쪽으로 휘어진다면 그것은 발해의 해안선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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