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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기울어진 미술관…캔버스 속 소품이길 거부하고 뛰쳐나온 존재들

2022-09-09

저서 '캔버스를 찢고…'에 이어

무용수·흑인 하녀·코뿔소까지

작품 속 마이너와 권력 이야기

올랭피아
에두아르 마네의 1863년 작 '올랭피아'(왼쪽)와 장 미셸 바스키아의 1982년 작 '올랭피아의 하녀'. <한겨레출판 제공>
표지
이유리 지음/한겨레출판/ 280쪽/1만6천800원

그림을 매개로 사회 모순을 드러내며 독자와 꾸준히 소통해 온 이유리 작가의 신간이다. 이전 작품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에서 남성 화가의 작품에 가려진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번 책에서는 예술작품 속 권력 관계와 그 뒤에 숨겨진 '마이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용수, 흑인 하녀, 장애 소년, 전시된 코뿔소까지, 캔버스 속 소품이기를 거부하고 세상으로 뛰쳐나온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모두 24개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마이너들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그러면서 예술작품이 그려졌던 당대의 문화적 편협함과 무지를 지적한다. 권력과 재력에 예속되지 않고 그에 맞선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면서, 시대를 틀어쥐던 권력자를 고발하기도 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에서는 그림 속 흑인, 장애인, 병든 사람, 성소수자 등을 조명한다. 흔히 미술계에서 흑인은 백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 쓰였다. 이는 마네의 '올랭피아'와 루벤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화가 바스키아는 미술계에서의 '흑인의 쓰임'에 대해 비판하고 흑인의 자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올랭피아의 하녀'를 그렸다. 저자는 바스키아가 '올랭피아의 하녀'를 통해 작정하듯 흑인 하녀를 인간으로 호출해 냈다고 설명한다. 또 그림 속 흑인 하녀는 더 이상 색채에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이거나, 백인의 용모를 부각하기 위해 동원된 소품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2부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여성혐오적 시선과 차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철학자 플라톤에 따르면 자궁은 '짐승 안의 짐승'이었다. 얀 스테인의 그림 '의사의 왕진'을 통해 '자궁 혐오'에 대한 오랜 역사를 알 수 있다. 아직도 여성은 '월경을 하면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히스테릭해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부각하기 위해 자궁을 혐오해 왔던 역사가 이어져 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또 여성에게 바람직한 어머니상을 맹목적으로 강요하는 사회를 꼬집기도 한다. 세간티니의 '욕망의 징벌'과 휘슬러의 '회색과 검정의 조화'를 예를 들며 '이상한 모성 신화'를 강요하는 사회가 결국 여성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애나 블런던의 '단 한 시간만이라도'와 피터르 얀선스 엘링가의 '네덜란드 집의 내부'를 통해서는 사회 안팎으로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노동 현실을 고발한다. 저자는 이 그림들이 내재한 의미를 설명하며, 여성의 사회적 노동과 가사노동에 정당한 지불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3부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에서는 어린이와 노인 혐오, 전염병에서 비롯된 혐오, 재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사람들에 관해 살펴본다.

4부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에서는 예술권력에 저항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동물권·환경 문제·투기 등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특히 동물권과 관련된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피에트로 롱기의 그림 '베네치아에서 열린 코뿔소 전시회'를 소개한다. 이 그림에서는 오랫동안 인간의 '구경거리'였던 동물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간에게 끌려다니며 전시되다 죽은 코뿔소 클라라와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 비판적 시각을 자아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권력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나려 분투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을 뒤집고 마침내 해방에 이른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여기 있다. 이 책이 예술의 참모습을 다각도로 살필 수 있는 또 하나의 채널이 된다면, 지은이로서 더없는 보람"이라고 밝혔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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