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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백두대간 자생식물 이야기 〈15〉부게꽃나무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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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식물양묘연구실 대리)

10여 년 전 여름, 지금보다 식물쪽 지식이 얕았을 때 설악산 공룡능선을 오른 적이 있다. 가파른 계단을 힘들게 올랐을 때 공룡능선을 배경으로 노란 촛대를 수없이 세운 듯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촛불 잔치를 떠올릴 만큼 참 묘하고 멋진 나무라는 생각이 들어 검색해보았다.

단풍나무 특유의 날개 달린 열매가 듬성듬성 달린 것을 단초로 단풍나무류에서 검색해 본 결과 부게꽃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결혼식 부케를 연상하면서 '부게꽃나무라 불리는구나' 했다.

부게꽃나무(Acer ukurunduense Trautv. & C.A.Mey.)는 한국·중국·러시아·일본 등지에서 자란다. 여느 단풍나무와 달리 지리산 이북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 고산성 낙엽 지는 큰키나무다.

전남 방언으로 '부게(곡식 씨앗을 저장하는 농기구)'를 닮아서 부게꽃나무라 부른다고 한다. 꽃은 수꽃과 양성화가 섞여 피는 암수한그루이다. 5~6월에 노란색 꽃이 원뿔 모양 꽃차례로 가지 끝에 달린다. 화서(꽃차례) 위에는 수꽃이, 아래로는 양성화가 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화서 상부에는 듬성듬성하고, 하부에 열매가 주로 달린다. 여느 단풍나무가 그렇듯 부게꽃나무 열매도 헬기 프로펠러나 잠자리 날개처럼 생겼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열매는 공기 저항을 덜 받고 공중부양력을 부여받으면서 모체로부터 멀리 날아가는 전략을 취한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봄에 순록 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보고 녹색 전류가 흐른다고 표현했는데, 대부분의 나무가 그러하듯 단풍나무류도 가을이면 홍색 전류(?)가 흐른다고 할 수 있겠다.

식물 잎이 봄과 여름에 녹색을 띠는 것은 세포 내에 초록색 색소인 엽록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잎에는 초록색의 엽록소 외에도 노란색 및 주황색 계열의 색을 내는 카로티노이드와 붉은색을 내는 안토시아닌이 보조 색소로 함께 들어있다. 가을이 되고 기온이 떨어지면 식물은 수분 증발을 막고 겨울을 나기 위해 잎자루와 줄기가 만나는 부분에 잎으로의 수분, 양분 이동을 차단하는 떨겨층을 형성한다.

이후부터는 엽록소가 점차 사라지고, 보조 색소들의 색깔이 비로소 드러나 노랑·주황·빨강 등 제각각의 단풍을 발현한다. 카로티노이드가 많은 은행나무·생강나무·밤나무류는 노란색 또는 갈색으로, 안토시아닌이 많은 단풍나무·화살나무·벚나무·옻나무·붉나무·담쟁이덩굴 등은 붉은색으로 물든다.

부게꽃나무는 음지와 양지 모두 잘 자라는데 내한성이 강하고 도심지에 잘 적응하며 해안에서도 잘 자란다. 나무가 전체적으로 수려하고 개화기에는 노란색 꽃차례가 가을철엔 붉은색 단풍이 볼만해서 군락으로 조성하면 좋다. 그러나 아직까지 부게꽃나무 대규모 군락 조성은 드물다. 국·공립수목원에서 단풍나무 주제원을 조성할 때 부게꽃나무를 적극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을 날씨가 청명하고 일교차가 크면 단풍이 깨끗하고 짙게 든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단풍이 드는 시기가 점차 늦춰지고, 그 색깔마저 점점 칙칙하게 물드는 추세다. 식물이 겨울을 나기 위한 몸부림이 단풍이다. 인간과 자연이 슬기롭게 공존하면서 선명하고 깨끗한 단풍을 오래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동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식물양묘연구실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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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식물양묘연구실 대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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