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실험서 경제학전공자가
다른 분야보다 더 이기적
경제인 가정을 당연시하는
이론 공부하고 연구하다가
그 인간형을 내면화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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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보면 맨 앞에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인)라는 개념이 나온다. 먼저 인간이 어떤 특성을 가진 존재인지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책에서도 경제활동을 하는 개별 주체는 경제인이라는 가정을 깔고 논의를 진행한다. 소비자는 가진 돈으로 상품을 잘 사서 자신의 만족도를 최대로 높이는 존재로 그려지고, 생산자는 생산요소를 잘 활용해서 상품을 만든 후 팔아서 이윤을 최대로 늘리는 존재로 묘사된다.
경제인은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상찬하는 인품을 갖춘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밖에 모르고 머릿속은 온통 계산뿐인 존재, 하지만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완벽한 지식과 예측능력을 갖춘 존재에 가깝다. 한마디로 경제인은 엄청나게 똑똑한 이기주의자, 합리성과 이기심으로 무장한 로봇 같은 사람이다. 학생들은 이런 내용이 담긴 교과서로 경제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경제인이 자신과 크게 다르다고 느낀다. 그러나 곧 뛰어난 학자들이 개발한 이론이 틀렸을 리 없다고 여기며, 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많은 경제학 교수들은 인간을 똑똑한 이기주의자로 가정하는 관행이 경제학의 시조 애덤 스미스에게서 시작됐다고 가르친다. 스미스가 교환을 설명할 때나 시장원리의 우월성을 강조할 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스미스의 저서를 읽어보면 그는 인간을 이기심만 가득한 로봇 같은 존재로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스미스는 무리하게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지하지도 않았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 경제학'에서 경제인 가정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을 합리성과 이기심만으로 설명하는 관행은 존 스튜어트 밀에게서 시작되었다. 밀은 "경제학은 오직 부를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게만 관심을 둔다"고 주장했다. 단 그는 인간을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자의적이며, 거기에 기초해 만든 이론은 추상적인 차원에서만 타당하다고 여겼다. 경제인 가정에 명백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문제는 밀 이후의 경제학자들이 이 한계를 무시한 채 인간의 성품을 합리성과 이기심으로만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20년대에 시카고학파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는 이 두 가지 특성에다 완벽한 지식과 예측능력을 추가했다. 1960년대가 되면 분석의 편의를 위해 인간의 여러 특성 가운데 일부에만 초점을 맞추는 차원을 넘어서, 현실 세계의 인간들이 모든 지식과 정보를 갖추고 철저한 계산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보는 견해가 득세한다.
마침내 경제인은 '현실의 인간을 그린 모델'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이 따라야 할 모델'로 승격한다. 이타심·정의감·애국심 등은 간직할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심성으로 취급되기에 이른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실험을 했더니, 경제학 전공자가 다른 분야 전공자보다 더 이기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경제학 교수들은 연봉이 훨씬 적은 다른 학과 교수들보다 기부금을 적게 낸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도 있다. 경제인 가정을 당연시하는 이론을 공부하고 연구하다가 그 인간형을 내면화한 결과일 터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과 기업, 정부에도 경제인을 내면화해 당당하게 이기적 행동에 나서는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어찌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경제학자들이 작은 가정 하나를 잘못 다룬 결과가 실로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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