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 '落果' 등 죽음·인생 사유
시편 곳곳 비움·시 향한 첫마음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일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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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정호승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구시 수성구 범어천에서 열린 '정호승 시비 제막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이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나온 시집이라 더욱 뜻깊다.
외로움과 상처를 근간으로 보편적 실존에 이르는 시인의 시 세계는 이번 시집에도 여전하다. 독자를 이끄는 길은 한층 다채롭고 아름답고 따뜻해졌다.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백열다섯 편의 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은 결사적이어야 한다"는 시인의 변하지 않는 태도 덕분이다.
이번 시집에는 '죽음'에 대한 사유가 유독 돋보인다. 시인은 첫 시 '낙과(落果)'의 첫 구절을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책임을 진다는 것이다'라는 아포리즘(aphorism)으로 시작한다. '죽고 싶을 때가 가장 살고 싶을 때이므로/꽃이 질 때 나는 가장 아름답다'(-'매화불(梅花佛)' 중-)라고까지 한다. 그렇다고 죽음을 찬미하는 것은 아니다. 흙탕물이 단순히 죽음을 의미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를 키우는 생명의 물이듯, 오히려 새로운 생명의 근원으로서 죽음을 생각한다. 시집 도처에는 죽음 이면에서 삶이 꿈틀대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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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지음 창비/192쪽/1만1천원 |
문학평론가 이성혁도 해설 서두에서 "죽음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사유하는 것, 다시 말해 죽는 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이 시집이 보여주는 정호승 시인의 시적 윤리다"라고 평했다.
시인은 또 인생에 대해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증오하기에는 너무 길다'(-'모닥불' 중 -)고 조언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증오에 휩싸이고 그로 인한 번민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항상 괴롭다. 시인이 찾은 한가지 답은 '비움'이다. 시인은 '빈 의자는 비어 있기 때문에 의자'(-'빈 의자' 중-)이고, '빈 물통은 물이 가득 차도 빈 물통'(-'빈 물통'중-)이며, '빈집은 빈집이므로 아름답다'(-'빈집' 중-)라고 말한다. 원래 우리의 마음은 비어 있는 상태이므로, 본연의 상태를 유지해야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시인의 가치와 태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그 무엇도 두렵지 않으므로'(-'독배' 중-) 삶의 고통과 증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담담한 어조로 적어 내려간 시인의 일화들 또한 무척 감동적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시편은 애틋하고 애절하다.
'다급히 돌아와 아파트 문을 열자/엄마 돌아가셨다/누나가 덤덤히 잘 갔다 왔느냐고 인사하듯 말한다/미안해요 엄마/얼굴을 쓰다듬으며/사랑해요 엄마/뺨을 비비며/어머니 임종을 지키려고 급히 다녀왔는데/기다려주시지도 않고/영원히 기다려주시지도 않고/봄을 기다리던 어두운 저녁 일곱시'(-'어머니에 대한 후회'중-)
그러면서 시인은 어머니의 부재로 '아무도 나를 매질하지 않는'(-'회초리꽃' 중-) 현실을 서럽게 깨닫는다.
인생의 황혼 녘에 이른 시인의 결심도 시편 곳곳에 드러난다.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택배'중-) 나이이지만 '시를 쓰는 고통'마저 기쁨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내 육신은 늙어가도 내 영혼만은 시의 향기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시를 향한 내 마음만은 50년 전 처음 등단했을 때 그 청년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시인의 말' 중-)고 다짐한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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