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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준의 閑談漫筆] 무작정(無作亭)

2022-10-21

부모팔아 친구 산다는 말은

친구 소중함 일깨우는 교훈

知友인 서예가 불출선생과

무작정 정자 짓는 것 목표로

무작정 살기로 의기투합

[하용준의 閑談漫筆] 무작정(無作亭)
하용준 (소설가)

상주에 거주하는 나는 오랜만에 부산으로 가 서예가 불출(弗出) 선생을 만났다. 낙동강은 상주 사벌에서 그 이름을 얻어서 부산 다대포에서 대장정의 끝을 맺는데 지우(知友) 불출 선생과의 만남은 마치 낙동강의 처음과 끝이 만나는 격이었다. 다대포는 낙동강이 실어 날라놓은 고운 백사장이 인상적인 해변이다. 사벌의 돌멩이가 다대포에 이르러 먼지 같은 모래 입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분골쇄신(粉骨碎身)하였는가. 가을바람에 분분(粉粉)히 날리는 그 모래 가루 속에 심신을 맡겨두고 우리 두 사람은 권커니 잣거니 하며 회포를 풀었다.

최치원의 발자취가 어려 있다는 바닷가의 작은 바위 언덕 몰운대의 일화 끝에 내가 말하기를, 마음속에 누추한 정자를 한 채 지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무작정(無作亭)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불출 선생이 화답하기를, 만약 내가 한 채 짓는다면 어제가 없다는 무작정(無昨亭)으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가벼운 즐거움이 일었다. 어제가 없다는 말은 지나간 삶에 연연해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는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으며 오직 현재를 살 뿐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나타내는 뜻임을. 그렇다면 무작정(無作亭)과 무작정(無昨亭) 편액 두 장을 정자의 앞뒤로 내어 걸자고 제안하였다. 그런 뒤에 그곳에 들어 일없는 무작(無作)하고, 어제가 없는 무작(無昨)하며, 박주(薄酒)든 명주(名酒)든 미주(美酒)든 가리지 않고 대작(對酌)에 힘쓰는 무작(務酌)을 하자고 하였다. 또 세월을 잊은 채 무작정(無酌定) 글씨를 쓰고 글을 짓자고도 하였다.

잠시 유쾌해 하던 불출 선생이 갑자기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형편에 어느 때나 되어야 실제로 그런 정자를 한 채 짓겠느냐고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내가 그 또한 무작정이라고 했더니 다시 빙긋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일은 성사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꿈꾸는 정자는 별장이나 세컨드하우스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또 꼭 경치가 빼어난 곳에 고상하게 지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사방 벽을 치지 않고 훤히 터져 있는 것이 정자의 묘미니 그 어디든 내키는 곳에 자리를 깔고 탭을 쳐 놓고서 이름만 붙여도 되는 것이요, 작은 들마루 한 장 놓고 네 귀에는 그늘대를 세워서 지붕 대신 차양막을 치는 것만으로도 제법 그럴싸한 정자가 되리라. 불출 선생에게 일단 우리가 지을 정자의 모양을 대강 그려 보라고 하였다. 편액의 글씨는 두 장 다 불출 선생이 쓰기로 하고 나는 정자를 짓게 된 경위서인 발문(跋文)을 짓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우리 두 사람은 무작정 정자 한 채를 짓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날까지 무작정 살기로 의기투합하였다.

전하는 말로 부모 팔아 친구 산다고 하였다. 한 세상 살면서 부모에 의지하는 것은 잠깐이고 평생토록 흉금을 터놓고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친구뿐이니 그러한 친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훈이다. 옛사람들은 상팔하팔(上八下八)이라고 하여 위아래로 8살까지는 서로 벗으로 사귀었다. 그만큼 친구의 폭을 두루 넓게 가졌던 것이다. 나이를 잊고 사귄다는 망년지교(忘年之交)라는 말도 그런 까닭에 생겨났으리라. 삼망지우(三忘之友), 연령과 신분과 재력을 잊고 늘 뜻이 맞는 친구가 한 사람 있다면 그것으로 충족한 세상살이임은 분명하다. "불출 선생, 어떠신가? 어제는 거기 다대포 노을을 안주 삼아 심심풀이로 한잔하였지만 오늘은 이곳 퇴강나루 물이랑을 떠다가 무작정 한잔하심이? 가가(呵呵)!"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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